[우크라 침공 한달] 진창에 빠진 러시아 탱크…장기전되나
'속전속결' 키이우 점령 전략 차질…우크라이나 결사 저항
서방, 우크라이나에 무기 대규모 지원하지만 파병은 거부
(서울=연합뉴스) 차병섭 기자 =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동·남·북 3면에서 동시에 침공하며 시작된 전쟁이 러시아의 예상 밖 고전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완강한 항전 속에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양국의 전력차가 크고 러시아가 장기간 대규모 군대를 수개월간 접경에 대기시킨 끝에 침공한 만큼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이다.
러시아의 포격과 폭격으로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양측은 종전을 위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 "수도 키이우 장악해 속전속결" 초반 계획 차질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우크라이나 접경 주둔 병력을 늘렸다.
침공 일주일 전에는 벨라루스, 러시아 서부와 크림반도, 흑해 등 3개 방면에 병력을 19만명으로 증강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26만명 정도인 우크라이나 병력에 맞서 전면전을 벌이기는 어려운 만큼 수도 키이우(키예프)로 곧바로 진격해 항복을 받아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당초 서방은 나흘 안에 키이우 함락을 예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쟁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러시아군은 제공권 장악에 실패했고 지상군과 공군의 합동 운영, 병참에서도 허점을 드러내며 고전을 이어갔다.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신속 점령하는 것을 포기하고 최근 포위 작전으로 변경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가 키이우로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는 만큼 포위 후 도시로 이어지는 보급선을 끊어 '고사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작전은 철저히 사전에 설정된 계획과 과제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라며 "처음부터 누구도 이 심각한 작전이 이틀 정도 걸리리라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 "여기에 있다" 키이우 지킨 젤렌스키…서방 군수 지원도
침공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가 지난해 탈레반에 속절없이 무너졌던 아프가니스탄 정권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힌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는 침공 직전 정치인과 기업인이 연이어 해외로 도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주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공 이틀째에 직접 스마트폰을 들고 키이우 거리에서 인증 영상을 찍어 올리며 소문을 일축했다.
이어 올린 영상에서는 "모두가 여기에 있다"라며 러시아에 대한 결사항전을 독려했다.
시민들도 이에 호응해 화염병을 만들고 총동원령에 따라 총을 들었고 서방이 지원한 최신 무기도 우크라이나 저항에 보탬이 됐다.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은 러시아군 탱크 저지에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드론과 스팅어 대공미사일, 기관총·유탄 발사기 등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 나토에 전투기 지원과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으나 확전을 우려한 서방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폴란드 등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은 평화유지군 형태의 직접 파병을 주장하지만 미국은 병력 파병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신속히 승인해 달라고 거듭 촉구했으나 이 요청도 사실상 거부당했다.
◇ 마리우폴 등 남부 항구 공격…"러, 장성 5명 포함 7천명 전사"
키이우 외에 러시아군이 침공 직후부터 공격을 퍼붓고 있는 곳은 마리우폴, 헤르손 등 남부 연안 항구,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동부 돈바스 등이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함락시키면 2014년 점령한 크림반도와 친러 세력이 장악한 돈바스를 연결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는 또 다른 항구도시 멜리토폴과 헤르손도 장악했으며, 21일 오전 우크라이나의 최대 물동항인 남서부 오데사 외곽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가 흑해, 아조우(아조프)해 연안의 항구 도시를 손에 넣으면 우크라이나의 해상 물류가 끊어져 물자 공급에 피해를 볼 수 있다.
러시아군은 이뿐만 아니라 침공 직후 북부 체르노빌 원전과 남부의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했으며, 하르키우에 있는 원자력 연구소를 폭격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략 시설에 대한 타격도 이어가고 있다.
18일, 20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8일 크림반도 병합 8주년 행사에서 자국민을 대상으로 이번 침공은 돈바스 지역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제노사이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거듭 주장했다.
하지만 침공 이후 러시아군은 장성 5명을 포함해 7천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사기도 크게 저하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 종전 협상서 영토문제 난관 예상…"앞으로 2주가 관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단은 개전 닷새만인 지난달 28일 1차 협상을 한 데 이어 이달 3일과 7일 2차, 3차 협상을 벌였다.
양측은 현재 화상 방식으로 4차 협상을 진행하면서 일부 중요한 쟁점에서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측 협상 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지난 18일 양측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차를 좁혔다고 밝힌 바 있다.
메딘스키 보좌관은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와 '탈나치화' 문제는 합의로 가는 중간지점 정도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협상의 최대 난관은 영토 문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 측은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과 돈바스 지역의 친러 공화국 독립을 인정하도록 우크라이나에 요구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은 2주 이내에 전쟁이 끝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가오는 2주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징후를 보면 러시아가 공격을 늦추기보다는 배가할 것처럼 보인다"라며 이는 속도가 더 느릴지라도 우크라이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bs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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