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의 '디지털 철의 장막' 뚫어라…정보전 나선 터미네이터·해커
슈워제네거·우크라 해커들·미 국무부 등 다양한 채널로 '진실알리기' 나서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해외 언론·인터넷이 차단된 러시아인들에게 '디지털 철의 장막'을 뚫고 이 전쟁의 진실을 알리려는 정보전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개전 이후 러시아는 자국 내에서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서방 소셜미디어를 차단했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으로 규정하는 언론매체를 가짜 뉴스의 전파자로 규정해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켰다.
서방 언론들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옛 소련 등 동구권의 폐쇄성·비밀주의를 빗대 쓴 '철의 장막'이란 표현을 인용해 러시아가 새로운 디지털 철의 장막을 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이 해외의 언론·정보로부터 자국 국민을 차단하고, 국영 언론매체가 묘사한 대로만 현실을 인식하도록 해 러시아 국민을 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런 디지털 철의 장막을 뚫고 러시아 국민에게 전쟁에 대한 진실을 전달하려는 정보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참전군'도 다채롭다. 할리우드의 일급 액션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부터 우크라이나의 해커들, 미 국무부까지 정보전에 뛰어들고 있다.
CNN은 이런 활동이 과거 냉전 시절 소련 지역을 상대로 한 라디오 방송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메시지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등 각종 무료 디지털 수단이 생기면서 누구나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슈워제네거는 17일 트위터와 텔레그램 계정에 러시아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연설 동영상을 올렸다. 그의 트위터 계정은 500만명이 넘는 팔로워가 있고,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앱인 텔레그램의 계정엔 1만9천여명의 구독자가 있다.
그는 러시아어 자막이 붙은 이 영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전쟁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것에 대한 진실을 내가 말하도록 해주길 바란다"고 운을 뗀 뒤 우크라이나 산부인과에 대한 러시아의 폭격 등을 설명했다.
슈워제네거는 또 자신이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항상 러시아 국민의 힘을 존경해왔다며 "하지만 여러분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치선전에 속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은 러시아 국민의 전쟁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의 측근은 슈워제네거가 미 정부의 요청 없이 자발적으로 이 동영상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자체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재빨리 이 동영상을 공유했다. 국무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 나흘 만에 텔레그램 계정을 신설했다. 러시아 국민과의 소통 채널이 사라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국무부는 이 계정에 러시아어로 전쟁을 규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상세히 전하면서 내부의 정치선전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담은 게시물들을 올렸다.
국무부는 17일에는 "크렘린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적으로 전쟁을 개시하기 한참 전부터 가짜 뉴스 캠페인과 독립 매체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왔고, 침략 전쟁 기간에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다만 이 계정이 큰 반향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 인구는 1억4천만명이 넘는데 이 계정 가입자는 1천900여명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와 다른 외국의 해커들로 구성된 일명 '우크라이나 정보기술(IT)군'은 좀 더 공격적으로 싸움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뉴스 사이트를 해킹하고 러시아 측 사상자에 대한 정보를 퍼뜨리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사이버보안 업체 임원 이고르 아우셰프는 자국 국방부를 대표해 이런 해킹을 조직화하는 일을 돕고 있다.
아우셰프는 러시아 국민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잘 알지 못한다며 "그게 바로 가장 중요한 표적 중 하나가 미디어가 돼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다. 우리는 그들에게 진짜 뉴스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특정한 단일 플랫폼 또는 정보전 캠페인이 러시아 대중의 상당수에 파고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미 국무부 관리도 "이것들 중 어느 것도 필살기는 아니다"라고 시인했다.
그러나 디지털 철의 장막을 뚫으려는 이런 일련의 활동의 공통된 목적은 전쟁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와 러시아군의 사기를 조금씩 갉아먹으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러시아 국민 수천명이 반전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고, 한 국영방송 기자가 생방송 중 '전쟁 반대' 표지판을 들고 시위한 일을 가리켜 "이것은 푸틴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가 러시아 국민에게 전사한 러시아 군인과 전쟁 포로들 사진을 전달하는 데 가능한 모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일각에선 미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상당한 자원을 쏟아부었던 냉전 시절의 대규모 정치선전 활동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CNN은 전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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