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전 2주차…교전 지역서 수만 명 대피·인도주의 위기 심각
수도 키이우 일부 지역·수미·에네르호다르 등지서 4만 명 대피
마리우폴 1천명 이상 사망…어린이 병원 폭격받아 17명 부상
체르노빌 원전 냉각시설서 방사능 유출 우려…전선은 교착 지속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승욱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4일째인 9일(현지시간) 교전 지역의 민간인 수만 명이 안전 통로를 통해 대피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안전 통로 개설에 실패한 지역에서는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 보고됐다.
우크라이나 집권당 '국민의 종'의 다비드 하라하미야 대표는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4만 명 이상의 여성과 어린이가 대피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인도주의 통로를 통해 민간인을 대피시키기로 하고, 인도주의 통로 주변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임시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많은 지역에서 합의를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바딤 데니센코 우크라이나 내무부 보좌관은 "키이우(키예프) 일부 지역과 수미, 에네르호다르 지역에서만 민간인 대피가 이뤄졌으며,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는 민간인이 교전 지역을 벗어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인도주의 통로 개설 작전을 방해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인도주의적 대응을 위한 정부 부처 간 조정본부' 지휘관 미하일 민진체프는 러시아 측이 제안한 10개 노선 가운데 키이우 남부 방향 노선, 수미-폴타바 노선, 마리우폴-자포로지예 노선 등 3개 노선만 조율됐다고 전했다.
이어 "인도주의 통로 개설과 주민 대피 작전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방해로 예상됐던 결과를 내지 못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의 인도주의 상황이 지속해서 악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9일째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을 받는 마리우폴에서는 도시를 향한 포격과 폭격이 계속돼 민간인들이 탈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병원 산부인과 병동과 어린이 병동이 공격을 받아 17명이 부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마리우폴 어린이 병원이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았다면서 "이번 참사는 심각한 수준이며 어린이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재까지 이번 폭격으로 17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했으나 건물이 무너져 피해자가 더 나올 우려가 있다.
마리우폴의 어린이 병원 폭격에 대해 미국 백악관과 영국 총리, 바티칸은 각각 '야만적'(Barbaric)·'타락한'(Depraved)·'받아들일 수 없는'(Unaccepta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비난했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난방, 전기, 가스 공급이 모두 끊겨 시민들은 눈을 녹여 마시고 있다"며 "러시아의 침공 이후 현재까지 최소 1천170명의 민간인이 숨졌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사무소는 침공 당일인 지난 달 24일 오전 4시부터 이날 0시까지 우크라이나에서 숨진 민간인은 어린이 37명을 포함한 516명이라고 집계했다.
다만, 이는 확인된 사례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희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날 정오 기준 우크라이나에서 피란을 떠난 난민 수가 215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군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사용 후 핵연료 냉각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망이 파손돼 방사성 물질 유출 가능성이 제기됐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원전 시설 내 자체 디젤 발전기는 48시간 동안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며 "그 이후에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의 냉각시스템이 멈춰 방사능 유출이 임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원전의 사용 후 연료 저장조의 열부하(heat load)와 냉각수의 양은 전기 공급 없이도 열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며 "정전이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북부와 돈바스 등 동부 지역, 마리우폴 등 남부 전선의 교착 상태는 이날도 유지됐다.
여전히 러시아군은 키이우·체르니히우·코노토프·수미·하르키우(하리코프)·마리우폴·미콜라이우 등을 공격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군은 현재까지 주요 거점에서 러시아의 공세를 저지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개전 2주 차로 접어든 시점에서 러시아가 처음 침공을 위해 준비한 전력의 약 10%를 소모한 것으로 파악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는 개전 이후 약 710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며 "러시아군은 전날 약 20㎞를 전진해 하르키우 외곽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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