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전세기 철수 난항…불안한 중국인들 각자도생 모색
(선양=연합뉴스) 박종국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정세 악화로 중국의 전세기를 이용한 교민 철수 계획이 차질을 빚자 현지 중국인들이 불안에 떨며 각자도생의 길을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 주재 중국대사관(이하 대사관)은 지난 27일 "포격 또는 미사일의 피해를 볼 위험이 있어 현 단계에서 전세기로 교민들을 철수시키는 방안은 시행하기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적극적으로 다른 철수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며 "안전 조건만 갖춰지면 즉각 방안을 가동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사관은 지난 25일 "교민들을 귀국시킬 전세기를 띄울 계획"이라며 "탑승 희망자는 27일까지 신청하라"고 공지한 바 있다. 현지 중국인들은 정세 악화와 우크라이나인들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며 조속한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수도 키예프에 거주하는 한 유학생은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 영상을 올려 "포성과 폭발음이 끊이지 않는다"며 "방공호에 대피해 대사관 지침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여성 유학생도 웨이보에 올린 영상에서 굳은 표정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갔다가 현지인들이 위협하며 쫓아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대사관은 러시아 침공 직후인 지난 24일 "장거리 운전 시 중국 국기를 부착하라"고 공지했다가 현지에서 반 중국 정서가 확산하자 하루 만에 "중국인 신분이 드러나는 표식을 드러내지 말라"고 지침을 바꾼 바 있다.
러시아 침공 초기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은 중국 국기와 여권"이라며 "생명을 지켜주는 호신첩"이라고 의기양양해하던 현지 중국인들의 웨이보 동영상도 자취를 감췄다.
판셴룽(範先榮) 주 우크라이나 중국대사는 지난 27일 대사관 웨이보 계정에 영상을 올려 "중국 동포가 전화를 걸어 '대사가 도망갔다는 말을 들었다. 키예프에 없다는 게 사실이냐'고 물어왔다"며 "내가 여전히 키예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출연한 영상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는 현지 중국인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였지만, 우크라이나 체류 중국인들이 불안에 떨며 동요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부 중국인들은 독자적으로 우크라이나 탈출에 나섰다.
환구시보(環球時報)는 현지 교민들이 직접 차를 몰고 주변 폴란드,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으로의 철수를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정보통신 장비업체 화웨이의 우크라이나 직원 40여 명은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차량을 이용, 슬로바키아로 피신했다.
우크라이나 부인과 결혼, 다섯 자녀가 있다는 쑨광(孫光)은 "가족을 데리고 키예프를 벗어나 시골로 가려고 차를 몰았으나 길이 막혀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국적자와 대만동포만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다"며 "중국 국적이 없는 아내와 어린 자녀들을 전장에 두고 혼자 떠날 수는 없어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중국 누리꾼들은 "대만동포는 데려오겠다면서 중국인 가족은 방치한다는 건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키예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역에는 무역상, 유학생, 화교 등 6천명가량의 중국인이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일찌감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예고하며 자국민 대피와 여행금지령을 내리고 대사관도 철수했지만, 중국은 러시아 침공설을 '가짜뉴스'라고 치부하며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pj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