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배상에 왜 아프간 자산 사용?" 탈레반, 미국 강력 비난
대변인 "아프간 자금 훔친 것…도덕적 부패"
인권운동가도 "아프간 국민은 9ㆍ11 테러와 무관" 주장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미국이 9ㆍ11 테러 희생자 유족 배상에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자산 중 일부를 사용하기로 하자 아프간 집권 세력인 탈레반과 인권 운동가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탈레반 정부 대변인인 모하마드 나임은 11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국에 의해 동결된 아프간 국민의 자금을 훔치고 압류하는 것은 최하 수준의 도덕적 부패라고 비난했다.
나임 대변인은 역사에서 승리와 패배는 흔하다며 "하지만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는 도덕적 패배가 군사적 패배와 결합할 때"라고 덧붙였다.
20년간 지속된 아프간 전쟁에서 '패배'한 미국이 도덕적 이슈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질책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9ㆍ11 테러 희생자 유족들이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동결된 아프간 정부의 자금 70억 달러(약 8조4천억 원) 중 35억 달러(약 4조2천억 원)를 받게 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동결 자금 중 나머지 절반은 아프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할 방침이다.
앞서 희생자 유족들은 9·11 테러 직후 탈레반과 알카에다, 이란 등 사건과 관련한 집단이나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1996∼2001년 아프간에서 집권했던 탈레반은 9ㆍ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다가 미군의 침공을 받고 정권을 잃었다. 이후 오랜 내전 끝에 지난해 8월 20년 만에 재집권했다.
그러자 미국은 연방준비은행에 예치된 아프간 정부의 자산 70억달러를 동결했다. 탈레반 집권 후 동결된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은 이를 포함해 9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 유입이 막히자 아프간 화폐 가치가 하락했고 물가가 상승하는 등 안 그래도 허약했던 아프간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이에 탈레반 정부는 최근까지 국제사회에 동결된 해외 자산을 해제해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이번 미국 정부의 조치에 대해 탈레반뿐 아니라 아프간 인권운동가들도 이의를 제기했다.
아프간계 미국인 인권운동가인 빌랄 아스카리아르는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에 "아프간 국민은 9ㆍ11 테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결정에 대해 미군의 참담한 철수로 인해 빈곤에 처한 국가에서 공적 자금을 훔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권 단체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아프간'의 설립자 할레마 왈리도 "(동결된) 아프간 중앙은행의 자금은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아프간 국민의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사회가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아프간 정부의 동결 자산을 압류한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아시아 담당 존 시프턴 국장은 "어떻게 한 국가의 자산이 주권 정부로 인정받지 못한 단체의 빚을 갚는 데 사용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에 예치된 아프간 정부 자금이 탈레반 자금으로 여겨져 압류되면 미국이 탈레반을 아프간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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