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체제 반년] ① 경제난·인권 탄압·테러…아직은 암흑 속
자연재해까지 겹쳐…지도부 실정 속 여성·언론 갈수록 궁지
"사면 약속 안 지켜져"…IS 등 테러도 빈발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이슬람 강경 수니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지 6개월이 됐다.
파죽지세로 아프간 각 지방을 장악해가던 탈레반은 지난해 8월 15일 수도 카불에 들어섰다. 그러자 대통령은 국외로 도망쳤고 친서방 정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20년 만에 아프간을 다시 통치하게 된 탈레반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입각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엄혹하게 사회를 억눌렀던 1차 집권기(1996∼2001년) 때와 달리 여러 유화 조치도 내놨다. 과도 내각도 출범했다.
하지만 산과 들에서 총을 들고 싸우던 '전사'들이 직접 국가를 운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지도부의 실정 속에 경제는 심각하게 무너져내렸고 인권 존중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와중에 체제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 정부 모양새는 갖췄지만
탈레반은 카불 함락에 성공한 지 3주만인 지난해 9월 7일 과도정부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정부 모양새부터 구축하고 나선 것이다.
조직 서열 2인자이자 '실세'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정부 수반이 되리라는 예상을 깨고 '경량급'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가 총리 대행으로 임명됐다. 바라다르는 부총리 대행을 맡았다. 조직 내 정파들이 경쟁 끝에 타협한 결과였다.
내각에는 아프간 정부 출신 관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여성도 배제됐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수배자 등 내각 멤버 대부분이 탈레반 핵심 강경파였다.
현지 언론에서는 과도정부 내각은 6개월만 지속할 것이며 이후 포괄적인 공식 정부가 출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 원조 중단·해외 자산 동결·가뭄·홍수…줄줄이 악재
안 그래도 허약했던 아프간 경제는 지난 반년간 급속하게 무너졌다.
공공 부문 경비의 75%가량을 맡아온 '재정 기둥' 해외 원조가 우선 끊어졌다. 아프간 정부의 해외 자산 90억 달러(약 10조8천억원) 이상도 동결됐다.
그러자 물가는 폭등했고 실업자는 쏟아져 나왔다.
와중에 자연재해까지 겹쳤다. 수년째 가뭄이 지속된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홍수, 폭설, 지진이 덮쳤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해 말 아프간에서 2천400만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간의 인구수는 약 4천만명이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국제사회는 최근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본격적으로 개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12월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촉진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기도 했다.
◇ 교육·여행·TV 출연…여성에겐 먼 이야기
탈레반은 집권 후 포용적 정부 구성, 인권 존중, 전 정부 공무원 등에 대한 사면령 등 여러 유화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실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특히 여성 인권은 좀처럼 보장되지 않는 분위기다.
중·고등 여학생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가까운 친척 남성과 동행하지 않은 채 72㎞ 이상을 여행하려는 여성은 차에 태워주면 안 된다"며 여성의 외출과 여행에 대해 제한 조치도 도입됐다.
그에 앞서 작년 11월 하순에는 여성의 TV 드라마 출연과 해외 드라마 방영 금지 등을 담은 방송 지침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에 카불 여성들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종종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 대원이 여성들을 위협하거나 시위에 참여했던 여성 운동가가 나중에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제 커지는 공포감 속에 여성의 목소리는 더 사그라들고 있다.
◇ 언론도 암흑기…절반 이상 무너져
언론인도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이달 초 국제기자연맹(IFJ)의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 재집권 후 지금까지 318개 이상의 언론사가 폐업했다. 불과 6개월 사이에 기존 언론사 중 59%가량이 무너진 셈이다.
언론사가 차례로 문을 닫은 것은 탈레반이 도입한 새 언론 규정과 탄압,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탈레반은 새 언론 규정을 통해 이슬람에 반하거나 국가 인사를 모욕하는 보도를 금지하고 있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언론인이 구금되거나 폭행당하는 일도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정부 관리들도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말 공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 집권 후 100명이 넘는 아프간 전 관리, 군인과 국제 연합군 협력자가 살해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는 탈레반의 사면 약속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 탈레반 비웃으며 활개 치는 IS-K 그리고 알카에다
탈레반은 자국 영토 내의 테러리즘을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분파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IS-K는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수니파지만 탈레반의 태도가 온건하다며 비난해왔다.
탈레반과 대립하던 IS-K는 지난해 8월 26일 카불 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켜 18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에도 카불, 동부 잘랄라바드 등에서 테러를 이어왔다.
이에 탈레반은 IS-K의 은신처를 급습하는 등 대대적인 토벌 작전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노력과 달리 IS-K 축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와중에 알카에다 같은 테러단체도 전례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달 초 공개된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알카에다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의 경호에 관여했던 아민 무함마드 울하크 사암 칸이 작년 8월 말 아프간으로 돌아왔다.
빈 라덴의 아들도 작년 10월 탈레반을 만나기 위해 아프간을 찾은 것으로 보고됐다.
coo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