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별 과학기술 공약 나왔지만…'차별성·구체성 부족' 지적
李·安 "과기부총리 부활"…尹 "대통령 직속 과기위원회"
나열식 공약 쏟아내기에 "실현 가능성 판단 어려워"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후보들의 과학기술 공약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으나,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후보들은 글로벌 선도국가 도약을 위해 과학기술 지원을 전폭 강화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공약에 구체성이 떨어지고 실현 가능성 판단도 어려우며 차별성도 크지 않다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평가다.
◇ 조직 개편·거버넌스 변화 앞세우고 전략 기술 개발 강조
주요 대선 후보들은 주로 과학기술 부총리제 신설 등 정부 조직 개편과 정책 거버넌스 변화를 과학기술 분야 공약으로 강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과학기술 7대 공약을 통해 과학기술 혁신부총리제 도입을 내세웠다.
이 후보는 이 밖에도 ▲ 미래 국가 전략기술 확보로 기술 주권 확립 ▲우주기술 자립으로 우주강국시대 선도 ▲ 감염병,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등 사회문제 해결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과학기술 연구 확대 ▲ 지역의 과학기술 역량 증진 ▲ 연구자 중심의 과학기술 연구 환경 조정 ▲ 청년, 여성, 해외 과학기술 인력 등을 포함한 과학기술 인력의 폭넓은 양성 등을 제시했다.
집권 여당 소속인 이 후보의 과학기술 공약 대부분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지난 8일 한국과총 주최로 열린 대선후보 초청 정책 토론회에서 대통령 직속 민관 합동 과학기술위원회 신설, 국가 장기 연구 사업 제도 도입, 청년 도전 기회 확대 등 과학 기술 정책 실천 방향 5가지를 제시했다.
윤 후보의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정치와 과학의 분리'를 강조하며 장기 연구 과제 설정이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5가지 초격차 과학기술'을 통해 '5개의 글로벌 대기업'을 만들어 '5대 경제 강국'에 진입한다는 비전을 담은 '555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 부총리 신설, 청와대 과학기술 수석비서관 신설, 100만 연구원 인재 양성, 연구개발(R&D) 관리 시스템 개선,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철폐 등을 강조했다.
◇ "후보별 차별성 크게 없어…모두 '좋으신 말씀' 뿐"
이런 공약들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과학기술부총리 신설은 신선함이 떨어지고 대통령 직속 또는 청와대 내 과학기술 관련 조직에 관한 구상은 현 정부의 과기정책 거버넌스 구조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와 안 후보가 언급한 과학기술부총리제는 노무현 정부에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이미 시행한 바 있다. 당시 참여정부는 과학기술부 장관이 부총리직을 겸직토록 하고 과학기술부 내 과기 혁신을 전담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했다.
염한웅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선 후보들의 '과기부총리' 공약에 관해 언급하면서 "과기계를 잘 대우하겠다는 정무적 메시지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윤 후보가 내놓은 민관 합동 과학기술위원회는 현행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과기자문회의)와 역할이 유사하다.
지난 1991년 정식 출범한 과기자문회의는 분야별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해 과학기술 분야 중장기 정책 등 대통령에게 자문하고 있다.
또 정부 개편이나 거버넌스 변화 이외에도 미래 선도 전략 기술 확보, 청년·지역 과기 역량 증진, 연구 환경 자율성 강화 등 대부분 분야에서 주요 후보들이 서로 겹치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윤지웅 경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달 18일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주최로 열린 '20대 대통령 선거 과기공약 평가 오픈 포럼'에서 "글로벌 패권 경쟁 중심에 과기 정책이 핵심이라는 점을 후보자들이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공약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민구 원장은 9일 "경제, 외교,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과학기술 분야 공약도 후보별 차별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며 "과기계에서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다들 '좋으신 말씀' 뿐이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글로벌 패권 경쟁 시대에 맞춰 선도 기술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총 동원해야 하는데도, 정작 후보들의 과학기술 정책은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게 한 원장의 의견이다.
한 원장은 "기술 패권 시대에는 해당 분야 1·2등이 아니면 모두 소용이 없는 상황이므로 막연한 중국·미국 견제가 아니라 특정 기술을 어떻게 세계 1등으로 만들고 지원할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균형 발전과 연구의 수월성 추구 사이에서 어떤 것을 지향할 것인지 후보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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