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다시 쓰는 헌법에 기후변화·환경파괴 대응 담을까
'염수도 물?', '물은 공공재?'…리튬 생산국 칠레, 제헌 중 수자원 논쟁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에 대한 대응을 헌법에 담으려는 칠레의 제헌 과정이 주목 받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칠레, 기후변화에 정면으로 맞서 헌법을 다시 쓴다"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제헌 절차에 돌입한 칠레 상황을 조명했다.
지난 7월 칠레는 현행 헌법을 폐기하고 새 헌법을 짜는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이는 지난 2019년 10월 칠레 전역을 뒤흔들었던 사회 불평등 항의 시위의 결과물이다.
당시 시위에서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인 1980년 제정된 현행 헌법을 폐기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 헌법이 사회 불평등과 부조리의 뿌리라는 것이다.
현 헌법 제정에 소수 엘리트 계층만이 참여했다면, 이번 제헌의회에는 변호사부터 교사, 주부, 과학자, 사회복지사, 수의사, 작가, 기자, 배우, 의사 등 다양한 직업군으로 구성돼 다양한 가치가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환경 보호도 그 중 하나로, 이번 제헌 과정에 환경을 경시했던 이전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노력이 반영되고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제헌의회 의원인 미생물학자 크리스티나 도라도르 오르티스는 "인간의 활동이 (환경을) 훼손한다고 가정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우리가 (자연에) 어느 정도의 손상을 허용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자원 기반으로 국가 경제를 꾸리는 칠레에서는 '자원 채굴을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어떤 자원을 보호 대상으로 지정할지' 등 논의가 제헌 과정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예컨대, 리튬 채굴 과정에서 수자원 보호 문제가 이런 논의 중 하나다.
스마트폰 배터리의 필수 원료인 리튬은 최근 전기차 수요까지 급증하면서 가치는 급등하고 있다.
칠레는 호주에 이어 세계 2위 리튬 생산국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리튬 생산업체 SQM 역시 칠레 기업이다.
SQM은 세계 리튬의 5분의 1을 생산하는데, 그 중 대부분이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에서 가장 건조하고 일조량이 많은 아타카마 사막은 마그네슘, 미네랄, 리튬, 칼륨 등 자원이 풍부한 주요 산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타카마 사막과 인근 지대 물 부족 현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현재 SQM 등 업체들은 아타카마 사막 염수호에서 염수를 끌어올려 거대 염전에 옮긴 뒤 염전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것처럼 태양열로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리튬을 생산한다.
이런 과정에서 너무 많은 수분이 증발하고 있으며 주변을 건조화시킬 우려가 있기에 염수호에서 일정량의 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칠레 정부는 염수호를 물이 아니라 광물(미네랄)로 규정하고 있는데다 현 헌법이 민간이 수자원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 이에 근거해서는 적절한 수자원 보호 방안을 내놓기 어렵다.
이에 따라 제헌의회는 염수를 광물이 아니라 수자원으로 규정하고, 수자원을 공공재로 두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나아가 이런 자원 채굴 정책에서 이전보다 지역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라고 NYT는 전했다.
오르티스 의원은 "극단적 상황에 처해 있는 여러 소금 평원을 연구하며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면서 현재 제헌의회가 물, 주거, 보건 서비스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움직임에 칠레 광산 업계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나온다.
호아킨 비아리노 칠레 광산위원회 위원장은 "(이런 내용은) 칠레가 헌법에 담아야 할 것이 아니다. 칠레는 광산 국가이기 때문"이라면서 이런 움직임에 따라 칠레로 들어오는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아가 광산 기업들은 채굴 중 추출되는 염수는 인간이나 동물이 음용할 수 없다며 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SQM 부회장 카를로스 디아즈는 "아타카마 소금 평원의 소금물과 산에서 흘러오는 물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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