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 "출제오류 명백…평가원 잘못"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에 김종일 교수 "열심히 푼 학생 손해"
"어른들이 어린 학생에 불신 심을 것"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는 법원 결정이 9일 나온 가운데 유전체 분야 전문가가 "오류가 명백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서울대학교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이며 의과학과장인 김종일 의과대학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100% 오류"라며 "문항에 오자만 있어도 문제가 되는데, 이건 평가원이 잘못한 게 맞다"고 지적했다.
출제 오류가 지적된 문항은 제시문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선택지 3개의 진위를 가리도록 요구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시문대로 풀면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가 발생하므로 문항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수험생들, 교사들, 전문가들 사이에서 잇따랐으나 출제를 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적을 수용하지 않아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성이 유지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평가원측 주장에 대해 김 교수는 "제시문에 오류가 있음이 명확하며 큰 오류가 있다"며 " 각 전문가나 학회에 질의를 한다면 '답을 하지 않겠다'와 '존재할 수 없다'의 답변만 나오지, '존재할 수 있다'라고 대답할 전문가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평가원은 개체 수를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고 오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저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현상이 나오는 이상한 수치를 주고 문제를 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제시문의 조건에 따라 모든 집단의 개체 수를 일일이 계산한 표도 공개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은 자신이 풀이한 내용을 확인하고자 검산을 했을 텐데 이런 과정에서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며 "이때 학생들은 '평가원이 오류가 있는 문항을 출제했을 리 없으므로 내가 틀렸겠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학생이 '평가원이 개체 수가 음수로 나오는 문제를 낼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넘기겠느냐"며 "문제 풀이를 반복하다 시간을 다 쓴 학생들만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평가원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는 표현으로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도 정답을 수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례는 학생들에게 자칫하면 평가원이 틀린 문제를 낼 수도 있고 그 결정은 웬만해서는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남길 수 있다"며 "특히 이 과정에서 어른들이 어린 학생에 심어주는 불신은 수능 성적을 다시 매기는 것보다 훨씬 더 손해를 우리 사회에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이날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이유를 "대한민국의 '전문가' 중에서 저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최소한 한 명은 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회가 의견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이 문제와 관련된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으므로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오류가 없다'는 의견 표명으로 받아들여질까봐 전문가 중 한 사람으로 의견을 밝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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