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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삶에서 깨달은 깊이만큼 음악도 깊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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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 "삶에서 깨달은 깊이만큼 음악도 깊어지죠"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프랑스 파리에서 피아노 4명이 협연
유튜브에서 눈여겨본 6일 김홍기·김도현·박진형과 공연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짜놓고 보니까 너무 욕심을 부렸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듣기는 좋지만 치기는 굉장히 어려울 거예요. 어려울 것을 알아도 음악을 가슴에 안고 태어난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70년 넘은 생을 피아노와 함께 한 거장에게서 나온 '굉장히 어렵다'는 걱정은 사뭇 신선한 느낌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그간 유럽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웠던 백건우(75)가 프랑스 파리에서 김홍기(30), 김도현(27), 박진형(25) 등 한국의 떠오르는 젊은 피아니스트와 특별한 공연을 한다.
이들은 6일(현지시간) 오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백건우와 친구들'(KUN-WOO PAIK ET SES AMIS)이라는 주제로 한 무대에 올라 4대의 피아노로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공연을 앞두고 지난 3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 등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백건우는 1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내내 동석한 피아니스트들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올해로 65년째 무대에 오르는 백발의 피아니스트는 많게는 50살 차이 나는 후배 앞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자신이 걸어온 '피아노 인생'에서 깨달은 이치를 들려주는 듯했다.
"우리는 우리 연주에 불만이 너무 많아요. 어떻게 내가 저렇게 못 쳤을까, 어떻게 내가 곡을 이렇게 몰랐을까, 어떻게 해석이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 그런데 또 돌이켜보면 그때만 할 수 있는 음악이 따로 있고, 그때마다 진실이 있었어요"
자신의 연주가 어떻게 진화했다고 보느냐고 묻자 "어떻게 해야 힘을 들이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해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음과 음을 연결하는 게 음악인데, 그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할 것인지 로직이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즉석에서 조언했다.
"음악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이해하는 데는 몇십 년이 걸리죠. 몇 년 만에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옛날에는 음악을 하려면 적어도 쉰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악이라는 언어를 잘 이해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함께 합을 맞출 피아니스트로 세 사람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다.
다른 음악회에 갈 시간이 많지 않아 수시로 인터넷으로 공연 영상을 찾아보다가 이들의 연주를 접했다는 백건우는 "그런 건 유튜브가 참 좋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세대를 초월한 연주는 어떤 화음을 만들어낼까.
백건우는 "나도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친구들이 모두 자기의 세계를, 자기의 음악적 언어를 갖고 있어서 말이 통한다"며 나이 차이가 협연에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백건우는 일평생 100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는 "젊어서는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게 곡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 그렇다고 본인이 그 곡 위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10월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 출신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할 때 악보를 들어 보이며 본인이 아니라 악보에 박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쓴소리도 했다.
"이게 옳은 태도 같아요. 음악이 더 중요한 거죠. 그런데 요즘은 세계적으로 음악계가 가벼워져서 탈이에요. 대중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음악, 컬러풀한 무대, 시선을 빼앗는 옷…. 연주하는 사람 본인한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젊은 친구들한테 주는 영향이 나쁘다고 봐요. 무책임한 거죠."
'콩쿠르 지상주의'가 불편하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본인 실력을 다듬고 훈련을 하는 측면에서는 나쁠 게 없고 필요하기도 하다"면서도 "연주하는 두 사람을 콩쿠르에서 절대 비교하는 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혹시나 제자를 양성할 계획은 없을까.
"자연적으로 되겠죠. 전에는 그럴 겨를도 없고 생각도 없었는데 지금은 '오픈 하우스입니다. 가끔 SNS로 외국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찍어서 이 곡은 어떻게 연주하느냐고 묻기도 하지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 윤정희(77)를 두고 윤씨의 가족과 빚고 있는 갈등과 관련해선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이런 고통이 연주에 어떤 영향을 줬느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으로 귀결됩니다. 독일어를 못해도, 러시아어를 못해도 그 나라 피아니스트들이 하는 연주에 감동하지 않나요. 삶에서 얼마나 깊이 깨달았느냐에 따라서 음악도 깊어지는 것 아닐까요."
같이 무대에 오르는 피아니스트들은 이번 무대가 세계적인 거장과 공연일 뿐만 아니라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함께 호흡하지 못한 유럽 관객과 만난다는 사실에 기대를 나타냈다.
김홍기는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연주자와 관객이 나이, 커리어, 국적을 불문하고 서로의 음악 세계가 만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도현도 "갑자기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나빠지는 와중에 이 자리에 다 같이 모인 것만으로도 감격스럽다"며 "관객과 함께 다 같이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진형은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백건우) 선생님과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마치 친구와 음악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며 "연주로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문화교류단체 에코드라코레(한국명 한국의 메아리·대표 이미아)가 개최하는 제13회 한불 친선 콘서트다.
공연 1부에서는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과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을, 2부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과 라벨의 '라발스'를 선보인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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