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이도스, 영국여왕과 결별하고 공화국으로 새 출발(종합)
30일 0시 대통령 취임…여왕 "번영하길" 축사
"다른 영연방 입헌군주국도 뒤따를 것" 전망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영국 여왕과 결별하고 신생 공화국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바베이도스는 독립기념일인 30일(현지시간) 0시를 기해 입헌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했다. 이날 샌드라 메이슨(72) 총독은 대법원장 주재 하에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현지 데일리네이션과 로이터통신·CNN 등에 따르면 29일 저녁부터 수도 브리지타운 중심에 있는 국가영웅광장에서는 공화국 전환 행사가 시작됐다.
이튿날 자정이 되자 하늘을 수놓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바베이도스 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21발의 예포가 발사돼 역사적 순간을 알렸다.
이 자리엔 지난 28일 바베이도스에 도착한 찰스 영국 왕세자도 참석해 광장에서 영국 왕실기가 내려가고 대통령기가 게양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메이슨 초대 대통령은 "우리는 바베이도스 공화국의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우리는 서로와 자국을 지키는 수호자다. 우린 바베이도스 사람들이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찰스 왕세자는 "공화국 전환은 새 출발을 알린다"며 "과거의 어두운 나날들과 우리 역사의 영원한 오점인 잔혹한 노예제를 뒤로 하고 이 섬의 사람들은 비범한 용기로 그들만의 길을 구축했다"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또 찰스 왕세자는 연설에서 양국의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도 재확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도 "그대 나라의 미래에 행복, 평화, 번영이 깃들기를 염원한다"며 멀리 영국에서 축사를 전했다.
바베이도스의 공화국 전환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55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인구 30만 명가량의 섬나라 바베이도스는 17세기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7∼19세기 흑인 노예들이 바베이도스로 대거 건너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지금도 인구의 90%가량이 아프리카계다.
1966년 11월 30일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으나 영연방 국가로 남아 영국 여왕을 군주로 섬겼고, 오랜 식민생활도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리틀 잉글랜드'로 불리기도 했다.
2000년 전후부터 공화국 전환을 위한 논의를 이어왔던 바베이도스는 마침내 지난해 9월 공화국 전환을 선언했다.
미아 모틀리 총리는 당시 "식민지 과거를 완전히 뒤로 할 때"라고 말했다.
바베이도스의 이번 역사적인 행보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군주로 여기는 다른 국가들의 공화국 전환도 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남미 국가 중엔 가이아나가 1970년, 트리니다드토바고와 도미니카가 각각 1976년과 1978년에 공화국이 됐다.
이어 1987년 피지, 1992년 모리셔스가 공화정 전환을 택했다.
모리셔스 이후 30년 가까이 만에 바베이도스도 영국 여왕의 그늘에서 벗어나면 여왕이 다스리는 영국 밖 국가들은 캐나다, 호주를 포함해 14개로 줄어든다.
왕실 전문매체인 매저스티 매거진의 조 리틀 편집장은 최근 AFP통신에 "여왕 집권기 동안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공화국 전환 흐름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 킹스칼리지의 리처드 드레이턴 교수도 자메이카와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에서도 공화국 전환 논의가 있음을 언급하며 특히 영어를 사용하는 카리브해 국가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망했다.
상징적인 의미는 상당하지만, 이번 공화국 전환이 바베이도스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영국 여왕 대신 메이슨 대통령이 국가원수가 돼도 모틀리 총리가 실제적인 수반 역할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또 공화국이 된 이후에도 영연방 일원으로는 계속 남는다.
바베이도스에 사는 다이앤 킹(34)은 로이터에 "나 같은 평범한 국민에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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