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왕자'·'홍의주교'…로마가톨릭 추기경은(종합)
교황 보필하는 최고위 자문위원…국제의전서 원수급 예우
(바티칸=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인 유흥식(70) 라자로 대주교에게 부여된 추기경(Cardinal·樞機卿)이라는 직급은 원래 '문지도리'·'중심'·'요충지'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카르도(Cardo)에서 유래했다.
문을 여닫을 때 없어서는 안 될 돌쩌귀나 문장부처럼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성직자라는 의미다.
이를 한자로 번역한 추기경이라는 용어 역시 '중추가 되는 기관(樞機)의 고위직(卿)' 정도로 풀어쓸 수 있다.
과거 왕자를 의미하는 붉은 제복을 착용한 것에 빗대어 '교회의 왕자', '홍의 주교'(紅衣主敎)라고도 한다.
가톨릭사 자료에 따르면 추기경이라는 호칭은 5세기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당시 로마의 25개 주요 성당을 추기성당(樞機聖堂)으로, 그 수석 사제를 추기경이라고 각각 불렀다.
8세기부터는 교황을 보좌하던 로마 인근 7개 교구 주교들에게 추기경이라는 호칭을 부여했다. 이들은 교황의 예식 집전을 보좌하거나 교황을 대리해 직접 예식을 집례했다.
추기경이 다른 성직자보다 월등히 높은 권위를 갖게 된 것은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재위 1058∼1061)에 의해 교황 선출권이 주어지면서다.
가톨릭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가는 지위와 위상을 공고히 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추기경은 '교황의 고문이자 협력자'로서 역할을 한다. 교회법(제349조)도 '보편교회의 일상 사목에서 교황을 도와드리고 보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제도화한 것이 추기경단과 추기경 회의다.
12세기 처음 구성된 추기경단은 교회법상 교황의 최고 자문기관이며, 교황의 명에 의해 소집되는 추기경 회의는 교회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대안 또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최고위 협의체다.
교황청 핵심 행정기구인 9개 성(省·Congregations) 장관을 포함한 고위 책임자가 대부분 추기경인 것도 이러한 고유의 역할과 무관치 않다.
이런 권위에 걸맞게 전 세계 모든 추기경은 출신 국가에 관계없이 바티칸 시민권을 갖게 되며 국제 의전상 최고 예우를 받는다.
추기경 규모는 시대별로 변천 과정을 겪었다.
13∼15세기까지는 통상 30명을 넘지 않았으나 해가 갈수록 그 수가 늘면서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가 칙서를 통해 그 수를 70명으로 제한하기에 이르렀다.
이 정원 규정은 20세기 중반까지 유지되다가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에 의해 폐지됐고, 이후 추기경 수가 계속 늘어 최근에는 215명 안팎에 이른다.
추기경은 기본적으로 종신직이다. 다만, 교구장 또는 교황청 보직을 맡고 있을 때 만 75세가 되면 교황에게 해당 직책의 사임을 청한다.
아울러 추기경으로서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만 80세 미만으로 제한된다.
유흥식 신임 추기경은 물론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임된 염수정(78) 추기경도 투표권을 지닌다.
그동안 투표권이 있는 추기경 수는 대체로 120명 안팎에서 유지돼왔으나 이날 신임 추기경이 대거 추가되며 변화가 예상된다.
신임 추기경 21명 가운데 16명이 만 80세 미만이며, 나머지 5명은 이미 80세이거나 다음 달 80세가 돼 사실상 콘클라베 투표에서 배제된다.
교황청 관영 매체 바티칸 뉴스는 신임 추기경이 서임되는 오는 8월 기준으로 전 세계 추기경 수는 229명으로 늘고 이 가운데 131명이 콘클라베 투표권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투표권을 지닌 추기경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때 임명된 이가 80명 이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으며 교회 개혁 가치도 상당 부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물러난다 해도 교황청 재무·구조 개혁 등 그동안 추진돼온 변화의 기조가 대체로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이래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등의 다양한 국가 출신으로 추기경을 구성하려 힘써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황 재위 기간 60여국에서 추기경이 배출됐는데 이 가운데 사상 처음으로 추기경을 낸 국가도 20개국 안팎에 달한다.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유럽 집중도도 그만큼 많이 옅어졌다. 여기에는 교회의 저변을 넓히고 그동안 소외돼온 지역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는 교황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신임 추기경 분포 역시 이러한 기조와 맥이 닿는다. 신임 추기경 21명을 지역별로 보면 유럽이 8명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아시아 6명, 중남미 4명, 아프리카 2명, 북미 1명 등으로 지역 안배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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