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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미국의 삼성 투자 주문은 기술 때문…기술 잃으면 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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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현 "미국의 삼성 투자 주문은 기술 때문…기술 잃으면 찬밥"
'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 인터뷰서 밝혀…"기술 리더십 유지가 중요"
김광호 전 부회장 "삼성, 1982년 ASML 인수 검토했지만 포기…안타까워"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진두지휘해 온 권오현(69) 삼성전자[005930] 전 회장(현 상임고문)이 삼성전자가 반도체 기술력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미국에서 '찬밥 신세'를 당할 수 있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권 고문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최근 발간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권 고문은 반도체산업협회 제6대(2008~2011) 협회장으로서 협회 특별 인터뷰에 참여했다.
권 고문은 "미국이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를 반도체 회의에 초대하거나 미국 내 팹 투자를 주문하는 것은 삼성이나 TSMC의 기술 때문"이라며 "이들의 앞선 반도체 제조 능력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다. (삼성전자가) 기술을 잃어버리면 찬밥신세가 될 것"이라며 기술 리더십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고문은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들의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는 "반도체는 국제 분업이 잘 이뤄져 왔고 우리나라는 반도체 제조 기술이 강하다"며 "주요 국가에서 반도체 자립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분업화가 쉽게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또 "유럽이나 미국도 반도체를 직접 다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면 언제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지니어 출신 전문경영인인 권 고문은 2004년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2008년 반도체사업부 총괄사장을 거쳐 2012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겸 DS부문장에 오른 뒤 이후 5년간 대표이사직을 수행했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직을 끝으로 지난해 고문으로 물러났다.
권 고문은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 방안에 대해 "흔히 시스템반도체를 '다품종 소량생산'이라고 하지만 정의부터 잘못됐다"며 "시스템 반도체는 '다품종 대량생산' 비즈니스로, 중소기업이 단독으로 해내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개발 비용과 글로벌 시장 대응을 위해 큰 기업이 돼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은 소수를 제외하고 1천억~2천억 규모에 머물러 있다"며 "(정부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육성하겠다고 접근하면 앞으로도 성공할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반도체산업협회 30년사에는 삼성전자가 약 40년 전 네덜란드의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업체 ASML 인수를 추진했다는 후일담도 나왔다.
ASML은 EUV를 이용해 5나노미터(㎚) 이하 초미세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업체다. 초미세 공정 한계 돌파와 극복과 차세대 반도체 생산을 위해 필수적인 장비로 평가받는다.
반도체산업협회 초대 협회장(1992~1997)을 지낸 김광호(81)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과정에서 인상 깊었던 사건에 대해 "1982년 필립스가 삼성전자에 ASML(당시 ASM) 인수를 제안해 현지 실사를 위해 미국 본사를 찾았다"고 밝혔다.
김 전 부회장 다만 "ASML은 당시 업력이 짧았고, 삼성도 사정이 넉넉지 않아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며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구현 기술을 따져 보면 안타까움이 남기도 한다"고 회고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이 회사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원로인 김 전 부회장은 "ASML이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성공한 것처럼 반도체 원천 기술 기반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남의 것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 원천 기술로 반도체 시대를 선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속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더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10대 반도산업협회 협회장(2016~2019)을 지낸 박성욱 SK하이닉스[000660] 부회장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처럼 중국과 미국에 반도체 팹이 모두 있는 반도체 회사들은 거의 없다"며 "다만 미국이 우려하는 부분, 중국이 우려하는 부분을 기업이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의 경우 중국 장쑤성 우시에 있는 자사 D램 공장에 EUV 장비를 배치하려 했으나 미국이 최근 반대하면서 제동이 걸린 상태다.
박 부회장은 "미국과 중국, 유럽 등은 반도체를 단순히 산업이 아니라 안보, 인프라로 여기는데 우리는 아직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국가가 나서서 외교 등으로 기회를 만들고 컨트롤타워 기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kc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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