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앙 투발루 장관 수중연설…"물에 잠겨도 국가 인정받나요"
허벅지까지 찬 바닷물서 COP26 화상연설
"이게 우리 현실"…섬나라들, 침수 탓 국가지위 흔들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수몰 위기에 처한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의 장관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수중 연설을 함으로써 기후변화로 존폐 기로에 선 섬나라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웅변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 8일 영국 글래스고의 COP26에서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서 말을 이어가는 한 남성의 모습이 방영되자 참석자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수중 연설의 주인공은 사이먼 코페 투발루 외교장관이었다.
그는 투발루의 한 해변에서 녹화된 영상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저를 보시듯, 투발루에서 우리는 기후변화와 해수면상승이라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며 눈앞에 실제로 닥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전 세계가 즉각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코페 장관은 "바닷물이 항상 차오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뿐인 약속만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며 "'기후 이동성'(climate mobility)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이동성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의 이동을 일컫는 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섬나라들이 물에 잠겨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게 되면 과연 그 나라들은 국가로서의 주권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코페 장관은 9일 공개된 또 다른 영상 연설에서 이런 의문과 관련된 견해를 밝혔다.
그는 "우리는 영토가 물에 잠겨 국민들을 이주시켜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해양수역의 소유권과 국제법상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와이와 호주 사이의 태평양에 위치한 군도 국가인 투발루는 해발고도가 약 2m밖에 안되는 데다 그마저 매년 0.5㎝씩 물이 차오르고 있어 전체 인구 1만2천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
코페 장관은 이어 "투발루는 신성한 섬으로 선조들이 살던 곳이자 현재 우리가 사는 터전"이라고 강조하며 "투발루를 미래 우리 국민의 터전으로 물려주길 원한다"고 호소했다.
1933년 발효된 몬테비데오 조약에 따르면, 항구적인 국민, 경계가 명확한 영토, 정부, 국제관계를 수행할 역량을 갖춰야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인정된다.
하지만, 투발루와 마샬군도, 키리바티, 몰디브 등 기후변화에 취약한 다수의 섬나라가 해수면 상승과 이에 따른 주민들의 이주로 국가의 지위마저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라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지난 달 마샬군도의 기후위기 대처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해수 침범을 막기 위해 해안방벽을 늘리고, 지면과 건물들을 높이고, 얕은 석호를 간척하고, 사람들을 고지대로 이주시키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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