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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폭 韓피폭자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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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원폭 韓피폭자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이었다"
권순금 할머니 "이제라도 희생자 위령비 건립돼 기쁘다"



(나가사키=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펑' 하고 엄청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하늘은 온통 검은 구름이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원자폭탄이라고 하더라."
권순금(95) 할머니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長崎)시에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권 할머니는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을 하루 앞둔 5일 나가사키시 자택에서 한국 언론 도쿄특파원들과 만났다.
그는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 떨어진 집에 있다가 피폭됐다.
당시 엄청난 화재가 발생해 몸이 불에 타 그을린 사람들이 많았고, 강에는 시체가 무수히 떠내려갔다고 한다.
나가사키시에 있다가 피폭된 권 할머니의 여동생 2명도 숨졌다.
피폭자는 모두 '언제 증상이 나올까'라는 걱정을 안고 살아왔고, 권 할머니 자신도 무릎이 안 좋아 일어나기 힘들어졌을 때 '이것이 원폭 때문인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500m 상공에서 폭발한 나가사키 원폭으로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수천명∼1만명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된다.
권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나가사키시에는 원폭 투하 당시 7만명의 조선인이 있었고, 이중 2만명이 피폭해 1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 중에는 일제에 의한 강제 동원된 노동자도 많았다.
1926년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난 권 할머니는 4살 때 어머니에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건너왔다. 나가사키시에 정착한 것은 15살 때였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와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를 모아 건설 현장 숙소를 운영했고, 권 할머니도 당시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11세 연상의 남편을 만나 18살 때 결혼했다.
권 할머니의 남편인 조연식 전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나가사키 지방본부 단장은 1971년부터 몸 상태가 안 좋아졌고 1983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3년부터 나가사키시에서 '아리랑정'이라는 고깃집을 운영해온 권 할머니는 1960년대부터 나가사키시가 주최하는 원폭 희생자 위령제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권 할머니는 한복을 입고 참석한 이유에 대해 "우리 사람(한국인)인 것을 알라고 그렇게 했다"며 "일본 옷이나 양복을 입으면 모르잖아"라고 말했다.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중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권 할머니는 매년 나가사키시 주최 원폭 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하다가 작년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6일 한국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개최되는 것에 대해 "감격이다"라면서도 "북조선에선 일찍 세웠는데 민단은 조금 늦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1979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과 일본 시민단체 주도로 '조선인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추도비'가 건립됐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민단 주도의 한국인 위령비는 이제야 건립됐다는 이야기다.
권 할머니는 뒤늦게라도 한국인 위령비가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 건립된 것에 대해 "기쁠 뿐"이라고 말했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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