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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엿새간 80조 '차이나머니' 유혹…중국 국제수입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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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엿새간 80조 '차이나머니' 유혹…중국 국제수입박람회
달콤하지만 위험 동반한 중국 사업…곤욕에도 버티는 자, 떠나는 자
중국, 구매력 과시하고 '개방확대' 선전하나 잦은 '무기화'로 신뢰 상실 자초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비록 올해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중국은 계속 중요한 시장입니다."
5일 중국 상하이 훙차오(虹橋) 국가회의전람센터(NECC)에서 개막한 제4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현장에서 만난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일'이란 H&M이 올해 중국 시장에서 부닥친 맹렬한 소비자 불매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H&M은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인권 문제를 이유로 신장(新疆)산 면화를 안 쓰겠다는 원칙을 표명했다가 올해 들어 분노한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 표적이 됐다. 그 결과 지난 3∼5월 중국권 매출이 30% 가까이 급감하는 등 큰 사업 손실을 봤다. 신장 자치구는 면화와 태양광 패널 등의 주요 글로벌 공급 지역이다.
이렇듯 곤욕을 치른 H&M이 올해 수입박람회장에 대형 전시장을 마련해 중국 소비자들에게 다시 손짓하고 나선 것은 많은 글로벌 기업들에 중국이 대체 불가능한 중요 시장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 'NIKE' 로고 사라진 자리엔 '나이커'(耐剋)
신장 면화 논란 때 인터넷에서 '신발 화형식' 영상이 올라올 정도로 중국 '애국 네티즌'들의 공격 표적이 됐던 나이키도 전시장에서 몸을 잔뜩 낮춘 채 '중국의 오랜 친구' 이미지를 부각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이키는 중국 현지법인 개설 후 40년 동안 중국과 맺어온 인연을 주제로 전시장을 꾸렸다. 나이키가 후원하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이 전면에 배치됐다.
전시장 입구 대형 간판에는 영어 로고 'NIKE'가 사라지고, 나이키를 뜻하는 중국어인 '耐剋(나이커)' 글자가 크게 내걸려 언뜻 보면 중국산 스포츠 브랜드처럼 보일 정도였다.


중국 시장에 건 기대를 묻자 나이키 중국 법인 관계자는 "나이키는 40년 동안 중국 소비자들과 함께 해왔다"면서도 "회사의 정책에 관한 부분은 상부의 지침 없이는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중국이 이미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떠오른 가운데 현대기아차, 포드, GM, 도요타, 혼다, 폴크스바겐, 벤츠, 볼보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도 대거 수입박람회에 참여하면서 대형 모터쇼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중국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자동차 메이커들은 각자 전시장에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모델을 전면에 배치했다.
중국 시장에서 고전 중인 현대기아차도 새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모델을 앞세워 시장 위상 회복을 노리고 있었다. 지난 9월 현대기아차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3%에도 미치지 못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번 수입박람회에 대형 통합 전시장을 꾸려 중국에서 곧 출시할 예정으로 알려진 전기차 아이오닉5와 EV6, 수소전기차 넥쏘를 선보였다.
인용일 중국현대 브랜드전략실장은 "현대기아차 그룹에 중국은 정말로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반드시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노력 중"이라며 "현지 소비자와 정부에 현대가 중국을 위한 발전된 기술을 많이 갖고 있고 투자 등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올해 수입박람회 현장에는 식료품, 생활용품, IT 제품, 기계·로봇류, 패션 명품, 의약품, 의료기기 등 분야의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모여들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 수입박람회에 참여한 기업은 127개 국가에 걸쳐 3천여개 기업에 달한다.
미·중 신냉전이 고착화하고 공급망에서 미·중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도 점차 뚜렷해지는 추세지만 GE, 마이크로소프트, 델, 퀄컴, AMD, GM, 포드 등 미국의 대형 기업들도 행사에 대거 참여했다.

◇ 구매력 앞세워 우군 확대 노리는 중국
이처럼 중국이 세계 굴지의 회사들을 불러 줄을 세울 수 있는 원천은 '차이나 머니'로 불리는 막강한 구매력이다.
중국 측 발표에 따르면 작년 열린 제3회 수입박람회 기간 체결된 구매 의향 계약액은 726억2천만 달러(약 86조원)에 달했다. 올해도 엿새 간의 행사 기간 최소 80조원대에 달하는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직접 주최하는 수입박람회는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2018년 중국이 강력한 구매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자 고안한 행사다.
미국은 그간 중국이 보편적 세계 무역 질서에서 벗어나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무역 불량국가'로 규정하면서 개선을 압박했다. 이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의 미·중 무역전쟁 발발로 이어졌다.
이에 중국은 수입박람회를 통해 수십조원의 돈을 흔들며 국제사회 내 우군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자국의 시장 개방 확대 의지를 선전해왔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11월 열린 제2회 수입박람회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초청해 에어버스 여객기 구매 등 15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 협력 선물 보따리를 안긴 것은 중국이 가진 구매력을 '대서양 동맹' 균열 기도에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중국이 수입박람회를 통해 선전하는 것처럼 금융 등 분야에서 시장 문호가 일부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 글로벌 기업들에 중국이 '기회의 땅'이 된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IT 기업들은 오랫동안 중국 사업을 꿈꿔왔지만 결국 '희망 고문'에 그쳤다.
시 주석 집권기에 접어들어 중국의 인터넷 통제는 더욱 극단화하면서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인터넷 기업들이 중국 진출 가능성은 더욱 옅어졌다.
2019년 열린 제1회 수입박람회 때만 해도 구글과 페이스북이 각자 전시장을 마련해 중국 시장 진출 의지를 강력히 피력하기도 했지만 이제 서방 주요 인터넷 기업들은 수입박람회 현장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아울러 중국이 자국의 구매력을 걸핏하면 타국을 압박하는 무기로 활용하는 관행도 글로벌 기업들에는 심각한 사업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여러 한국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온갖 비공식 경제 제재로 고통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후 중국과 대립각을 세운 대만, 코로나19 기원 조사 등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호주 등이 중국의 '경제 제재'의 대상이 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중국 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부각한 상태다.
아울러 국가 간의 직접적인 외교 갈등과 관련이 없더라도 H&M과 나이키의 사례처럼 중국이 세운 민감한 '기준'에 조금이라도 벗어날 경우 어느 기업도 의도치 않게 불매 운동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글로벌 기업들에 점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3일 사설에서 테슬라의 성공을 '미·중 협력'의 모범 사례로 치켜세웠지만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테슬라는 상하이 모터쇼에서 벌어진 차주의 돌발 시위를 계기로 중국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곤욕을 치렀다. 당시 중국 공산당 정법위원회는 테슬라를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공개 비난하기까지 했다.

중국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각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이 치열한데다 중국 기업들의 경쟁력도 강해지고 있어 중국에서 한국 기업들이 돈을 벌기도 점차 쉽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2016년 이후 중국 투자 한국 법인의 경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 매출 100대 기업 중 중국 매출을 공시한 30개 대기업의 대(對)중국 매출이 작년 117조1천억원으로 2016년(125조8천억원)보다 6.9% 감소했다,
상하이의 한국 기업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중국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조직과 인원을 축소한 곳이 상당히 많다"며 "상하이의 한국 대기업 법인 대표들이 수년 전에는 상무 이상 임원급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부장이나 과장급인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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