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정 '외교 왕따' 가속…'소수 친구' 전략 실패하나
'아세안 정상회의 배제'로 큰 타격…'양다리 전략' 중국도 거리두기?
"군정·전직 장성들에 충격"…아세안 정상회의 논의 중요·의장국 바뀌면 기조 시험대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 오는 26~28일 개최하는 정상회의에 군정 수장을 배제하기로 한 결정을 계기로 미얀마 군사정권의 외교적 '왕따' 상황이 주목받고 있다.
쿠데타 직후 서방의 제재에도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배경이 됐던 '소수의 친구' 외교 전략에 구멍이 생기면서 국제사회 인정을 노리고 있는 군정에 잇따라 타격이 가해진 모양새다.
지난 2월1일 쿠데타 이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는 국제사회의 제재 움직임을 평가 절하했다.
군정 제2인자인 소 윈 부사령관은 쿠데타 직후 크리스틴 슈래너 버기너 유엔 미얀마 특사와 한 전화 통화에서 "제재에 익숙하고, 살아남았다. 우리는 소수의 친구와 함께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의 친구'는 중국과 러시아 두 강대국과 미얀마가 속한 아세안을 일컫는 것으로 해석됐다.
1962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뒤 군부 지도자들이 실제로 효과를 봐 온 외교 노선이기도 했다.
초기에는 이 전략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중국 관영 언론은 쿠데타 하루 뒤 '내각 개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쿠데타를 비난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 채택을 막았다.
아세안 회원국 중 태국과 필리핀은 쿠데타를 '내정'으로 지칭하며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태국과 베트남, 라오스는 유혈 사태 한가운데서 열린 미얀마 국군의 날(3.27) 행사에 대표단까지 보냈다.
유혈 탄압 속에서 떠밀리다시피 만난 아세안 정상들은 4월24일 특별 회의를 하고 미얀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즉각적 폭력중단과 특사 파견 등 5개 합의사항을 내놓았지만, 군정에 이를 강제할 방법도,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미얀마 군정이 사태를 조기에 장악하지 못하면서 사망자가 늘고 무장 투쟁이 확산하는 등 정정 불안이 계속되면서, 미얀마 군부 '뒷배'라는 평가를 받아 온 중국의 행보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군부 태도에 불쾌함을 느끼는 것 같다(양곤 타가웅 정치학 연구소의 예 묘 헤인 소장)는 분석도 나왔다.
군부는 장기집권 계획에 따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문민정부 집권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 해산을 목표로 했지만, 중국이 지난달 공산당 행사에 NLD를 초청하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중국 정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군부가 교체하려던 초 모 툰 주유엔 대사에 대해 미국과 막후 외교 협상을 통해 유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중국 에너지 안보에 있어 핵심 지역인 미얀마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반군부 민주진영에도 발을 거치는 '양다리 전략'의 일환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 8월초 군정 최고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AC)를 과도정부로 이름을 바꾸고, 흘라잉 사령관 스스로 총리 이름표를 다는 꼼수를 통해 국제사회 인정을 받으려던 군정의 행보에 제동이 걸린 것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군정에 대한 외교적 타격은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달 초 아세안 외교장관들과 화상 회의를 가지려다 군정 외교장관이 참여하는 걸 알고 하루 전 회의를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 의회는 민주진영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를 미얀마의 합법적인 대표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군정 외교부는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했다.
군정에 대한 가장 큰 타격은 '소수 친구' 중 하나인 아세안의 정상회의 배제 결정이다.
4월 정상회의 합의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15일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 나온 이 결정은 기존 '내정 불간섭' 원칙 및 만장일치 관행을 벗어난 초유의 일이다.
군정 외교부가 두 번이나 성명을 내 "극히 실망"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낸 것은 당혹감을 방증한다.
아세안 결정 이후에 영국도 오는 12월 자국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 군정 대표를 초청하지 않겠다면서 '군정 왕따' 행보에 동참했다.
미얀마 양곤 타가웅 정치학 연구소의 예 묘 헤인 소장은 현지 매체 이라와디에 "아세안의 결정은 군정 뿐만 아니라, 1988년부터 2010년까지 국제사회 압박에도 '소수 친구들' 지지로 생존해 왔다며 정치·외교적 성공을 자랑해 온 이전 군정의 장성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고 지적했다.
다만 흘라잉 배제 결정이 이뤄졌다고 해서 미얀마 군정에 대한 비판적 행보가 아세안에서 계속 이어질지는 불명확하다는 시각도 있다.
동남아 전문가인 데이빗 헛은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흘라잉 사령관 대신 '비정치적 인사'를 초청하면서 오히려 아세안이 미얀마 사태를 제대로 다루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그는 또 내년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는 아세안 내 자주권 및 불간섭주의를 누구보다 지지하는 만큼, 의장국이 바뀌면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대한 아세안의 기조가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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