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식 과거청산…96세 나치전범, 1만1천명 살인혐의로 법정에
6만여명 숨진 슈투트호프 수용소에서 비서로 행정 사무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독일 사법당국이 96세 고령의 나치 전범을 1만1천여명 살인에 가담한 혐의로 법정에 세웠다.
피고인은 지난달 재판 직전 도주를 시도했다가 붙잡힌 지 3주 만에 다시 과거사 청산의 심판대로 불려 나오게 됐다고 가디언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고인 이름가르트 푸르히너는 1943∼1945년 강제수용소에서 약 1만1천건에 달하는 살인을 조력한 혐의로 이날 법정에 섰다.
그는 18살부터 폴란드 그단스키 인근에 세워진 슈투트호프 강제수용소에서 파울 베르너 호페 사령관의 비서 겸 타자수로 일하면서 잔혹 행위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다. 범행 당시 나이를 고려해 소년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
피고인은 이날 아침 스카프와 선글라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휠체어를 탄 채로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이체호의 법원에 들어섰다.
이날 공판은 피고인이 당초 지난달 30일 예정됐던 재판이 열리기 직전 도망을 시도해 연기된 이후 3주 만에 재개된 것이다. 당시 그는 곧장 경찰에 붙잡혀 5일간 구금됐다가 전자팔찌를 착용한 뒤에야 풀려났다.
법정에 들어선 피고인은 판사 요청으로 스카프와 선글라스를 벗어 모습을 드러냈다. 주위에는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투명 유리 스크린이 세워져 있었다.
피고인은 재판 도중 이름과 주소, 과부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을 뿐 다른 질문에는 답하기 꺼려했다고 변호인 측이 전했다.
재판이 시작되고 공소사실이 낭독되자 이에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따금씩 얼굴을 비비거나 왼쪽 손목에 부착된 전자팔찌를 움켜쥐거나, 법정 안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슈투트호프 수용소는 나치독일이 1939년 폴란드 북부 지역에 독일이 세운 이후 6만명이 넘는 유대인과 폴란드인 등을 살해한 제노사이드(종족 집단학살)의 현장이다.
나치는 총살, 굶기기, 한겨울에 벌거벗겨 밖에 방치하기, 심장에 직접 유독물질 주입하기, 독가스실에 감금하기와 같은 갖은 잔혹한 수단을 학살에 동원했다.
한편 이달 초에는 나치 수용소에서 일하며 소련군 포로들을 학살하는데 가담한 혐의를 받는 100세 남성에 대한 재판도 시작됐다.
독일에서는 2011년 법원이 강제수용소에서 일했던 존 뎀야누크(당시 91세)에게 직접적 증거가 없는데도 살인 조력 혐의의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한 판결이 분기점으로 작용해 이후 관련자들에 대한 유죄 평결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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