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악 이탈리아 사법제도 개혁 첫걸음…항소심 기간 단축
형사재판 개혁안 하원 이어 상원서도 가결…민사개혁안도 입법 추진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유럽에서 가장 느리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악명 높은 이탈리아 사법제도가 대대적인 개혁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탈리아 상원은 23일(현지시간) 항소심 공판 기한을 설정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형사 재판 개혁안을 찬성 177대 반대 24로 가결했다.
이 법안은 지난달 3일 압도적인 찬성으로 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상원 문턱도 가볍게 넘어서면서 입법화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번 개혁안은 항소심 공판 기한을 둬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AFP 통신에 따르면 중범죄가 아닌 경우 항소심은 2년 이내, 상고심은 1년 이내에 끝내야 하고, 테러·마피아 활동·마약 밀매·성폭력 등 중범죄 사건은 각각 5년과 2년 6개월의 기한을 준다.
전면적인 발효 시점은 2025년으로 잡혔다. 치안판사를 비롯한 전반적인 인력 충원이 수반돼야 하는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심각한 공판 적체 현상을 해소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비슷한 내용의 민사 재판 개혁법안이 상원을 통과해 현재 하원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 역시 무리 없이 입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더딘 사법제도를 가진 국가로 꼽힌다.
상고심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항소심 공판 도중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기이한 현상도 발생한다.
이러한 이탈리아 사법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 지탄의 대상이 돼왔으나 정치권은 정쟁으로 허송세월하며 단 한걸음의 진보도 이뤄내지 못했다.
그러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유럽연합(EU)이 이탈리아 정부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코로나19 회복기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법제도 개혁을 요구한 게 마중물이 됐다.
현재의 사법제도를 그대로 두고선 한계에 부딪힌 이탈리아의 경제·사회적 구조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이번 사법제도 개혁안을 두고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정당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좌초될 위기도 여러 차례 있었으나 당장 급한 EU의 자금이 버팀목이 돼 끝내 개혁이 성사됐다는 분석이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