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스가]② 민심 반영한다지만…파벌구도 못 벗어날 듯
국회의원 중심 선출 방식에 민심과 동떨어진 총리 가능성도
"사실상 견제세력 없는 자민당 장기 집권에 파벌 정치 성행"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오는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사실상 일본의 차기 총리가 결정된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의 탄생으로 이어진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이어 1년 만인 이번 선거는 10월 21일 임기 만료인 중의원 선거(총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것이 특징이다.
아울러 1년 전 총재 선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잔여 임기(1년)를 채울 후임자를 뽑는 선거였지만, 이번에 선출되는 총재의 임기는 3년이다.
선출 방식도 1년 전에는 양원 의원총회 투표(중·참의원+47개 광역지자체 지부 연합회)라는 약식이었지만, 이번에는 113만명에 달하는 자민당 당원이 참여하는 정식 투표다.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식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당내 주요 파벌의 담합으로 총재가 결정된 1년 전보다는 일단 민심이 반영될 여지는 커진 셈이다.
◇ 대중적 인기는 고노…의원 지지는 기시다 다소 우위
현직인 스가 총리가 지난 3일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자민당 내에서 스가 총리로는 중의원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스가 내각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면서 지역 기반이 약한 자민당의 1~3선 중의원을 중심으로 총선거 때 경쟁력 있는 인물을 당의 대표로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결국 현직이 출마하지 않는 가운데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개혁담당상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자민당 간사장 대형 등 4명이 후보로 나서게 됐다.
총선거에서의 경쟁력을 고려한다면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노 담당상이 단연 1순위 후보다.
게다가 고노 담당상은 인기와 지명도를 겸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의 지지도 받고 있다.
고노와 이시바는 일본 주요 언론사의 차기 총리 선호도 여론조사 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던 정치인인데 이시바가 출마를 포기하고 고노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대중적 인기가 높은 후보가 꼭 당선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해 아베 전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직후 실시된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교도통신)를 보면, 응답자의 34.3%가 차기 총리로 가장 어울리는 정치인은 이시바 전 간사장이라고 답했다.
당시 스가 관방장관을 꼽은 응답자는 14.3%로 이시바의 절반에 못 미쳤지만, 작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선 스가가 당내 주요 파벌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
◇ 결국 자민당 파벌 구도로 총재 결정될 가능성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자민당 총재 선출 방식 때문이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도 113만명의 당원이 투표에 참여하지만, 이들의 표는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 382명의 표와 같은 수(382표)로 각 후보에게 배분된다.
국회의원 표와 당원 표를 더해 과반(383표 이상)을 얻는 후보가 없으면, 상위 1, 2위를 놓고 국회의원(382표)과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지부가 각 1표씩 행사하는 결선 투표(총 429표)가 치러진다.
국회의원 표 비중이 크게 확대되는 결선 투표에선 당내 파벌 구도와 의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될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일본 주요 언론사의 자민당 총재 선거 판세 분석 결과를 보면 당원 투표에선 고노 담당상이 단연 1위이지만, 국회의원 표에선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다소 우위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고노 담당상이 이시바 전 간사장과 손을 잡은 것은 결선 투표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자민당 최대 파벌의 실질적인 지주인 아베 전 총리와 2위 파벌의 수장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결선 투표에서 아베와 아소로 대표되는 자민당 주류 세력이 개혁 성향인 고노보다는 안정 성향인 기시다를 선호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 "일본 파벌 정치…귀족 정치 같은 느낌"
새 자민당 총재는 다음 달 4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스가 총리에 이어 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총리는 하원인 중의원과 상원인 참의원에서 선출하는데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지명하는 총리가 다르고 양원 협의회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중의원 지명이 우선이다.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 연립 여당인 자민·공명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어 새 자민당 총재는 무난히 총리로 지명될 전망이다.
물론 11월로 예상되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집권당의 지위를 잃게 되면 일본 총리는 다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1955년에 창당된 자민당이 야당에 정권을 내준 적은 1993년과 2009년 단 두 번밖에 없다.
약 5년 동안의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하고 자민당은 창당 후 60년 이상 집권당 지위를 유지했다.
일본 정치에 정통한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선진국 중 한 정당이 이처럼 오랜 기간을 권력을 유지하는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자민당이 60년 넘게 집권하면서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가 성행하게 됐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민심과 다소 동떨어진 정치인을 파벌 간 짬짜미를 통해 총리 자리에 앉혀도 웬만해서는 선거에서 지지 않는다는 오랜 경험이 일본의 독특한 정치 문화를 형성해왔다는 설명이다.
일본 주요 언론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민당 지지율은 30~40%대이나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대체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야권도 분열돼 있어 사실상 견제 세력이 없는 상태다.
이 교수는 "일본과 같은 파벌 정치는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어렵다"며 "옛날 귀족 정치 같은 느낌을 준다"고 지적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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