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법리검토·향후징계 등 고려할 요인 많아"
시민사회 "1심, 기계적·협소한 법령해석…사법부 판단 더 구해야"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회장의 징계취소 청구소송에서 내부통제기준 미비를 이유로 은행 최고경영자(CEO)를 징계할 수 있다는 재량권을 인정받고도 항소를 머뭇거리고 있어 중징계 포기 관측에 점차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번주 내부 회의를 거쳐 손태승 회장 징계취소소송 항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항소 시한은 17일이다.
정부기관이나 공공기관의 항소는 법무부 지휘를 받아야 하므로 16일까지는 항소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소송의 판결문이 공개된 직후만 해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항소가 예상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요 쟁점에서 재판부가 금감원의 징계 논리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내부통제기준 미비에 대해 CEO의 책임을 인정했고, 금융사지배구조법에 따라 금감원에 은행 CEO 중징계 재량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 과정에서 우리은행이 상품을 선정하면서 투표 결과를 조작하고 투표지를 위조했으며, 형식적으로 상품선정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내부통제 규범·기준을 위반하고 유명무실하게 운영한 실태도 드러났다.
다만 법조문에 따라 CEO의 의무는 내부통제기준 '마련'이지 '준수'가 아니므로 손 회장을 중징계하는 것은 재량권 일탈이라고 재판부 판단했다.
그러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한 입법 취지는 준수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재판부의 판단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앞서 6일 배포한 공동성명에서 재판부의 징계 취소 이유를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또 금감원이 내부통제기준 마련 위반 사유로 제시한 5건 중 1건만 인정된 것도 재판부가 법조문을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CEO는 중징계할 수 있으나 준수하지 않은 것은 중징계 사유가 아니다'는 재판부의 논리가 법리적으로 타당한지는 전문가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다른 부분도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법원의 추가적인 판단을 구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법리 해석을 떠나 정부나 공공기관이 행정적 처분에 대해 1심에 패소했다고 곧바로 항소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도 지적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도 판결문 취지나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최소한 항소심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감지된다.
금융당국은 그러나 항소한다면 같은 문제로 징계가 예고된 금융회사 CEO 제재 심의와 최종 제재 수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금융위원회는 손태승 회장의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금융회사 CEO의 중징계안의 의결을 보류해 놓은 상태다. 금융위 당국자들은 판결 전부터 패소 가능성을 크게 봤다.
금감원이 항소를 결정하고 다른 CEO에 대해서도 손 회장과 동일한 잣대로 중징계 수위를 정한다고 해도 취소소송 제기와 금융위의 의결 연기 등으로 징계가 장기간 지연될 수 있다.
결정권을 진 정은보 금감원장은 지난달 취임 일성으로 '시장과 소통'을 강조하며 "사후적인 제재에만 의존해서는 금융권의 협력을 끌어내기 어렵고 결국은 소비자 보호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고 발언, 금감원의 기존 제재 기조에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금감원 관계자는 "법리 검토 결과와 다른 징계 사안에 미칠 영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시민사회단체는 금감원의 결정이 지연되자 항소 포기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항소를 촉구했다.
경실련, 참여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등 6개 단체는 앞서 6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금감원은 이번 판결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의 정착을 위해 즉시 항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융정의연대는 10일 항소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김 대표는 "재벌보다 심각한 금융지주의 황제경영 실태에서 금융사 지배구조 법령의 취지와 금융사 준법감시 의무가 형해화한 실태가 이번 소송에서 드러났다"며 "판결문의 내용이나 정부·공공기관의 하급심 패소 대응 전례를 볼 때 금감원이 항소를 주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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