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인종청소' 대상 하자라족 수천 명 탈출 행렬
몽골인 후손으로 수니파 탈레반과 다른 '시아파 무슬림'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다시 잡자 과거 집권 시절 '인종청소' 대상으로 삼았던 하자라족 수천 명이 파키스탄으로 탈출하고 있다.
30일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달 15일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정권 이양을 선언한 뒤 하자라족 약 1만명이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퀘타시 등으로 도망쳤다.
이들은 이민 브로커에게 1인당 한국 돈 8만원∼56만원을 주고 가까스로 국경을 넘었다.
탈레반이 국경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에 검문소를 세우고, 파키스탄 이민 당국이 무역상이나 여행허가증을 가진 사람만 국경을 통과시켜주지만, 이민 브로커는 뇌물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국경을 넘게 해주고 있다.
아프간인 중에서도 하자라족이 대규모로 탈출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아프간은 파슈툰족(42%) 외 타지크(27%), 하자라(9%), 우즈베크(9%) 등 여러 종족으로 이뤄졌다.
탈레반은 파슈툰족이 주축인데, 과거 통치기(1996∼2001년) 때 하자라족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고향에서 내쫓았다.
하자라족은 칭기즈칸이 1221년 서부 바미얀을 침공한 이래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동양인의 생김새를 가졌다.
게다가 파슈툰족은 이슬람 수니파인데, 하자라족은 시아파이다.
탈레반은 2001년 1월 바미안주 한 마을에서 하자라족 300여명을 집단 학살하는 등 많은 이들을 살해했고, 하자라족 종교지도자들을 투옥했으며 여성들을 납치해갔다.
대부분의 하자라족은 빈곤과 천대 속에 살아가야 했고 하찮은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
수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 산속에 살았고, 당시에도 국경을 넘어 탈출한 이들이 많아 지금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아프간 난민 가운데 대다수가 하자라족이다.
탈레반은 정권을 빼앗긴 동안에도 수시로 하자라족을 상대로 테러와 납치를 저질렀다.
탈레반 지도부는 재집권 후 '개방적이고 포용적 정부' 구성을 약속했지만, 이미 하자라족을 위협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탈레반이 바미안주에 있던 하자라족 지도자 압둘 알리 마자리의 석상을 파괴했다는 사진이 이달 18일께 소셜미디어(SNS)에 퍼졌다.
정확한 파괴 시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바미안주 등 중부 지역은 탈레반에 거의 마지막에 점령당한 지역이라 촬영 시점은 최근으로 추정된다.
마자리는 1990년대 중반 당시 한창 세력을 확장하던 탈레반에 맞서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이후 그를 기리는 동상이 고향에 세워졌지만, 탈레반이 이를 부순 것이다.
게다가 탈레반이 농촌지역부터 장악하던 지난 7월 문다라크 마을에서 탈레반이 하자라족 9명을 살해했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밝혔다.
하자라족 남성 6명은 총살됐고, 3명은 고문받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박해의 악몽이 되살아난 하자라족은 더는 아프간에 살 수 없다며 탈출 대열에 합류했다.
나이 든 하자라족은 자녀만이라도 아프간을 떠나도록 했다.
파키스탄 퀘타에 도착한 아프간 하자라족 모하메드 샤리프 타흐마시(21)는 "부모님이 여동생과 함께 둘이 가능한 한 빨리 국경을 넘으라고 돈을 주셨다"며 "하자라족 부모들은 자녀가 아프간을 무사히 떠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동생 나히드 타흐마시(15)는 "부모님과 헤어지기 싫었지만, 이미 탈레반이 여성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다"며 "그들은 여자가 공부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밖에 돌아다니거나 원하는 옷을 입는 걸 싫어했다"고 전했다.
퀘타에 도착한 또 다른 하자라족 여성 굴랄라이 하이데리는 "국경을 넘기 위해 보석을 팔았다"며 "두 번이나 파키스탄 입국 거절을 당했지만 지금 임신 중이고, 아프간에서 도저히 살 수 없다고 빌었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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