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식물 화석' 은행나무 잎서 공룡시대 기후를 엿본다
2억년 유지된 '타임캡슐' 잎 기공 변화서 대기 중 CO₂농도 연구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은행나무는 약 2억 년간 큰 변화가 없어 '살아있는 식물 화석'으로 불린다. 특유의 부채꼴 모양 잎이 2억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은데, 이런 점을 활용해 지구가 지금보다 더 더웠던 때의 고대 기후를 파악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AP통신에 따르면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고식물학자 리처드 바클레이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른바 '백악기 온실' 때 형성된 은행나무 잎 화석에 담긴 기후 정보를 해독하고 있다.
이 기간은 약 1억년 전부터 공룡이 멸종한 6천600만년 전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수치나 기온이 현재보다 훨씬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기후변화 과정을 알면 지금의 지구온난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 고대 기후에 관한 정보가 제한적이다 보니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 있는 은행나무 잎 화석을 활용하게 됐다.
연구팀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보관 중인 약 1억 년 전 은행나무 잎 화석을 활용 중이다. 화석에 선명히 드러나 있는 부채꼴 잎은 단번에 은행나무 잎이라는 것을 알아볼 만큼 지금과 똑같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잎 뒷면의 작은 구멍인 기공은 대기 중 CO₂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연구팀은 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잎은 이 기공을 통해 광합성에 필요한 CO₂를 흡수한다. 대기 중 CO₂ 농도가 높을 때 적은 기공만으로 필요한 양을 확보하지만 반대 상황일 때는 더 많은 기공을 만든다.
현재 대기 중 CO₂ 농도는 410 ppm으로, 연구팀은 이런 조건에서 은행나무 잎의 기공 상태를 확인했다.
또 19세기 말 빅토리아시대 식물학자들이 채집해 놓은 은행나무 잎 표본을 통해 인간이 산업혁명으로 지구의 대기를 바꿔놓기 이전의 기공에 관한 정보도 확보해 놓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약 1억 년 전 은행나무 잎 화석에서 기공 상태를 확인해 기후 정보를 얻는 것인데, '로제타석'과 같은 해독기를 얻기 위해 CO₂ 농도를 달리한 다양한 자연환경 조건에서 은행나무를 직접 재배하며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화석과 같은 형태의 은행나무 잎이 확인되면 이를 재배한 조건이 당시 기후를 알려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구팀은 또 은행나무 재배 실험에서 CO₂ 농도가 높아졌을 때의 결과도 연구 중인데, CO₂ 농도가 높을수록 나무가 더 빨리 자라는 것을 밝혀냈다.
바클레이 박사는 그러나 "나무가 너무 빨리 크면 잘못될 수 있고 허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애리조나대학교의 기후학자 케빈 앤추카이티스는 이번 연구와 관련, "과학자들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생태계나 바닷물의 화학적 구성 변화, 해수면 상승, 숲의 역할 등 대규모 기후변화에 지구가 과거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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