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바라의 습격? 인간이 먼저 침입"…아르헨 부촌 무대로 논쟁
부촌 주민들이 카피바라 떼에 불만 호소하자 "서식지 파괴한 탓" 반론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아르헨티나에서 한 고급 주택단지를 '습격'한 카피바라 떼가 개발과 보존, 빈부격차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아르헨티나 매체들에 따르면 논쟁에 무대에 된 곳은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에 있는 부촌 노르델타다. 4만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이곳은 외부의 출입이 제한되는 주택 단지인 이른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다.
이곳 주민들은 최근 카피바라의 잦은 출몰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남미 지역에 서식하는 카피바라는 설치류 중 가장 몸집이 큰 종으로, 성체의 몸길이는 1m가 넘고 몸무게도 60㎏ 넘게까지 나간다.
몸집은 크지만 온순하고 친화력이 좋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노르델타에 있는 카피바라 무리도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다.
그러나 카피바라가 키우는 개를 공격하거나 교통사고를 유발했다는 민원이 2019년부터 나왔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덩치 큰 카피바라가 줄지어 길을 건너거나 집 마당까지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한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현재 노르델타에는 400마리가량의 카피바라가 있는데, 2023년에는 그 수가 3천500마리로 불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늘어나는 카피바라에 스트레스를 받은 일부 주민들은 카피바라를 다른 장소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르델타 주민 구스타보 이글레시아스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주민들도 카피바라를 처음 봤을 땐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번식해 정원과 반려동물에 문제를 일으킨다. 감염병을 옮기거나 아이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주장이 알려지자 온·오프라인에서 반발이 나왔다.
카피바라가 노르델타를 '습격'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노르텔타가 카피바라 서식지인 늪지를 먼저 침입했다는 것이다.
파라나강 습지 위에 지어진 노르델타는 지난 2000년 건설 당시부터 환경운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해 화재로 30만㏊ 넘는 파라나강 습지가 파괴되면서 카피바라의 터전도 더욱 줄어들었다.
아르헨티나의 빈부격차를 여실히 드러내는 폐쇄적인 노르델타에 대한 반감도 표출됐다.
인터넷에는 카피바라의 '습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부촌을 조롱하는 게시물도 이어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에 입성한 탈레반 사진에 카피바라를 합성해 "카피바라가 노르델타를 점령했다"고 쓰기도 했다.
일부는 우스갯소리로 카피바라를 계급 투쟁의 선봉장으로 묘사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습지보호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는 생태학자 엔리케 비알레는 가디언에 "노르델타가 카피바라의 생태계를 파괴했다"며 "부동산업자들이 야생에서 산다는 꿈을 고객에게 팔기 위해 자연을 파괴한다. 그런 집을 사는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지만 모기나 뱀, 카피바라는 원치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노르델타는 습지의 흡수 기능을 앗아갔다. 기후 재난이 닥치면 결국 주변에 있는 가난한 마을 주민들이 홍수 피해를 볼 것"이라고 비판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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