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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더운데 마스크 왜 써?" 영국 '자유의 날'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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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더운데 마스크 왜 써?" 영국 '자유의 날' 한 달
지하철·마트에도 '노 마스크' 흔해…하루 신규 확진 3만명 안팎
거리두기 규제 없어지며 유동인구 늘어…봉쇄 전 일상 점차 복귀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 영국 런던 시내에서 교외로 향하는 기차에서 대학생 남녀와 마주 앉았다. '노 마스크'인 이들이 건너편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넌 도대체 마스크를 왜 쓰고 있어?". 친구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이들은 "우린 더워서 절대 못 쓰겠어"라고 했고 친구도 이내 마스크를 턱으로 내렸다. 여름이래 봐야 서늘한 날씨였다.
# 친구 사이로 보이는 20대 남성 네 명이 함께 지하철에 탔는데 한 명만 마스크를 썼다. 이들이 즐겁게 대화를 하다가 내리는데 한 명이 그제야 마스크를 꺼내 쓴다.
# 라디오에 사연이 나왔다.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마스크를 안 쓰고 있으면 어찌해야 하나요?'. 전문가는 공손하게 마스크 착용을 부탁해보고 안되면 다른 차를 타라고 조언했다.
# 고급 브랜드 상점이 모인 거리. 상당수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아무도 쓰지 않은 곳이나 제각각인 곳도 섞여 있다.



◇ 마스크를 안 쓸 자유와 책임 있는 행동
이는 영국이 방역 규제를 대부분 해제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를 없앤 7월 19일(현지시간) '자유의 날' 이후 한 달간 나타난 풍경이다.
규제 해제 첫날 런던 교외 마트에 갔을 때는 마스크를 안 쓴 직원 두 명, 고객 서너 명을 보고 놀랐는데, 18일 오후에 다시 방문하자 다른 풍경이었다. 대강 훑어봐도 수납 직원 두 명 중 한 명, 입구 쪽에서 짐 정리하던 직원 세 명 중 두 명, 상품 진열하는 직원 두 명이 '노 마스크'였다. 고객들은 진열장 칸마다 한 명, 계산대 옆과 앞에 각각 한 명, 입구 드나들 때 한 명씩 마주쳤다. 열 명 중 두세 명 꼴인 듯 했다.
기차나 지하철을 타도 비슷한 비율이다. 물론 낮에 런던 지하철에서 한 칸 승객이 모두 마스크를 쓴 특이한 일도 있었고 대부분 안 써서 옆 칸으로 피한 적도 있다. 출근길 서울 9호선 같지야 않지만 그래도 꽤 붙어 서야 할 정도로 복잡한데 절반쯤은 마스크를 안 쓰고 있기도 했다. 하루에 수만명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환경에서 그 정도면 KF94 마스크와 백신의 효능을 믿으며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화장실 전체에 한 명씩만 들어가기 혹은 한 칸씩 건너뛰기, 일방통행하기 등이 없어져서 편한 점도 있지만 마스크를 안 쓴 이들 가까이 있는 것은 불안하기도 하다.



영국이 마스크 착용 의무를 없앴다고 해도 모두 마스크를 벗어 던진 것은 아니다. 당시 델타 변이 확산으로 신규 확진이 하루 최대 20만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던 때라 의무 대신 권고가 등장했다. 대중교통, 복잡한 실내 등에선 쓰면서 '책임감 있게'(responsible) 행동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 '책임감 있게'의 해석도 자율적이다. 18일 영국 하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전면 대면 회의를 했다. 좁은 의사당에 빽빽하게 붙어 앉거나 서서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를 내는 모습이 오랜만에 나왔다.
여기서 보리스 존슨 총리를 비롯해 여당인 보수당 의원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아서 논란이 됐다. 복잡한 실내에선 마스크를 쓰는 것이 정부 권고이고 하원 의장이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지만, 권고는 권고일 뿐.
반면 제1야당인 노동당, 방역 규제가 더 엄격한 스코틀랜드의 스코틀랜드국민당(SNP) 의원들은 대체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한편, 반쯤은 실내인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선 공연 전에 직원이 한쪽엔 휴대전화 사용 금지, 다른 쪽엔 마스크 착용 안내가 있는 팻말을 들고 돌아다녔는데 휴대전화는 대부분 껐을 수 있지만 마스크는 거의 쓰지 않았다.



◇ 하루 신규 3만명…봉쇄 전으로 점차 복귀
영국은 '자유의 날' 직전인 7월 17일에 하루 신규 확진자가 5만5천명에 육박했다. 그런데 점차 줄더니 8월 초엔 2만1천명대로 떨어졌고 이후 조금씩 늘어서 전날은 약 3만4천명을 기록했다.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폭발적인 변화는 없는 상황이다.
하루 사망자는 대체로 두 자릿수이고 17일엔 170명을 찍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한동안 '미스터리'라고까지 불렸다. 백신 1차 접종률이 성인 인구의 90%에 달하지만, 집단면역 효과라면 이렇게 갑자기 줄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방학 효과와 검사 기피 영향이라는 의견도 내놨다.



하루 3만명이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이지만 추이가 '안정'되고 사망자도 크게 늘지 않으니 다들 다소 안심하는 분위기다. 특히 지하철에서도 20대들은 마스크를 많이 안 쓴다.
유동 인구도 부쩍 늘었다. 시내 한 직장인은 "출근길 기차에 사람이 많아져서 낯선 사람들이 옆자리에 붙어 앉아가는 모습도 보인다"며 "코번트가든 앞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는 이들을 보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고, 피카딜리 서커스와 옥스퍼드 서커스, 소호 등에도 한 달 전보다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출근을 시키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한국 금융회사 한 법인장은 "젊은 직원들이 백신 2차 접종을 완료하는 대로 전원 출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백신과 바이러스와 동거
많은 영국인은 바이러스를 박멸할 순 없으니 죽지 않는다면 걸리는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이클 고브 국무조정실장의 전 부인이기도 한 새러 바인 데일리 메일 칼럼니스트는 이날 칼럼에서 '최근 한 음악축제에 다녀온 아이들이 사실상 모두 코로나19에 걸렸는데 별문제는 없었고, 내 아이도 가고 싶어한다면 보내겠다. 코로나에 걸린다고 해도 이는 정상생활로 돌아가는 데 치르는 비용이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또 텔레그래프 기자도 음악축제에서 코로나19에 걸렸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스크를 안 쓰고 축구장이나 음악축제를 가고 길거리를 다니지만, 실상은 아직 정상생활과 거리가 멀다.



확진자가 하루 수만명이나 나오니 자가격리자도 너무 많고 파장도 크다. 기자가 사는 지역에서도 직원들이 자가격리에 들어가서 음식물 쓰레기 수거가 1주일 지연된 적이 있다.
한 의원은 주변인과 자녀가 잇따라 확진되며 자가격리만 40일 넘게 됐다고 토로했다. 공연은 연기자들이 집단으로 확진 혹은 자가격리 되는 바람에 취소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이 때문에 영국은 백신 접종자는 밀접접촉해도 자가격리를 면제해주는 '묘안'을 냈다.
영국 정부는 가을부터 일주일에 며칠씩이라도 출근시키려는 계획을 궁리 중인데 안전 대책을 마련하라는 직원들의 요구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한 중앙정부 공무원은 "작년 봄부터 재택근무 중인데 아직 다른 지침은 없다. 지금도 출근할 수는 있지만 미리 신고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하다"고 말했다.
이제 초점은 가을 개학에 맞춰져 있다. 초중고에서 마스크를 안 쓰고 코로나19 이전처럼 지낼 텐데 이것이 바이러스 확산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영국이 다시 힘든 겨울을 맞을지, 크리스마스를 즐길지는 여기에 달린 듯하다.


mercie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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