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미국, 아프간 대피 총력전…'어제의 적' 탈레반과도 대화
8월 말 완료 목표로 하루 최대 9천명 국외 대피…탈레반은 공항 안전이동 약속
미, 탈레반 불신은 여전…아프간 정부 자금 동결했고 탈레반 합법정부 인정은 미지수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이 17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인을 대피시키는 작전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은 그간 총부리를 겨눈 사이인 탈레반과 소통도 마다치 않지만 탈레반을 합법정부로 인정할지는 말을 아끼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의 진격으로 수도 카불까지 위험해지자 지난 12일 미국 시민권자의 출국을 촉구하는 동시에 대사관 인력 감축과 미군의 일시 증원배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15일 아프간 정부가 항복을 선언하고 탈레반이 카불의 대통령궁까지 점령해버리는, 미국으로선 예상치 못한 일이 터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아프간 정부의 붕괴가 예상보다는 빨랐다고 인정할 정도다.
대피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도가 적의 손에 함락되는 비상 상황이 생기자 미국은 카불에서 대사관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헬기로 인력을 실어나르는가 하면, 국외로 출국하려는 현지인이 공항에 끝없이 밀려들어 사상자가 생기고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운영이 마비될 정도로 큰 혼란을 겪었다.
혼비백산한 미국인의 대피가 1975년 베트남전 때 치욕적인 탈출 작전과 닮았다는 조롱 속에 '바이든표 사이공'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이런 가운데 16일 밤 11시께 공항 운영이 재개되며 대피 작전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대상은 미국 외교관과 시민권자, 미군에 협력한 아프간 현지인, 동맹 등 제3국인 등이다. 미 국방부는 현재 공항이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밝힌 이가 1만1천명이지만 전부 시민권자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8월 31일까지 민간인 대피 완료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탈레반과도 일정표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핵심 외교인력 철수가 완료됐다고 전했다.
미 합참 행크 테일러 소장은 "현재 공항을 드나드는 항공기는 시간당 한 대를 검토 중"이라며 "이는 하루 5천∼9천명을 출발시키는 정도"라고 말했다.
공항을 중심으로 배치키로 한 미군 인력이 애초 4천 명에서 6천 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이날까지 4천 명 이상이 주둔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진 프랭크 매킨지 중부사령관은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채 카불을 찾았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탈레반과 소통하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국방부는 하루에 여러 번 탈레반과 대화한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탈레반은 공항까지 민간인의 안전한 통행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알려 왔다"며 공항 이동 과정에서 검문소 문제나, 괴롭힘과 구타 등 폭력 사례에 대응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급해진 미국이 대피 작전을 위해 탈레반에 손을 내민 모양새다. 불미스러운 상황 발생 시 미국의 군사적 대응 경고를 접한 탈레반으로서도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도모할 기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탈레반에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지난 15일 미국 은행에 있는 아프간 정부의 수십억 달러 자금을 동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자금줄 옥죄기에 나선 것이다.
미국이 탈레반을 합법적 정부로 인정할지도 미지수다.
설리번 보좌관은 탈레반에 달린 일이라면서 현 시점에서 합법정부 인정 질문에 답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탈레반이 첫 기자회견에서 변화를 천명한 데 대해 "탈레반이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말한 것을 지키기를 기대할 것"이라고 했다.
탈레반이 무력으로 정권 장악 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종전의 강경론보다 완화했지만 미국의 불신과 반감은 여전히 매우 크다. 미국인 대피 완료 때까지 일시적 오월동주일 가능성이 상당해 보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민간인의 안전한 공항 이동을 약속했다는 탈레반에 대해 "우리는 그들을 믿지 않는다"며 강한 경계심을 표시했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