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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쟁 끌어온 美, 철군발표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수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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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쟁 끌어온 美, 철군발표 4개월만에 아프간 함락 '수모'
1조달러 투입·미군 2천400명 희생…친미정권 무너지고 탈레반이 다시 정권장악
20년전 아프간전 찬성한 바이든이 종식 마침표…최강대국 자존심에 큰 상처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 방침을 밝힌 지 불과 4개월 만에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손에 다시 넘어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4월 14일 20년 묵은 아프간전을 종식하겠다며 미군 철수를 공식화했지만, 철군이 완료되기도 전에 탈레반이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을 장악하고 정권을 인수하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미국에선 미군이 철수해도 친미 정권인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과 계속 맞서거나 여의치 못하면 영토를 분점하는 시나리오는 물론 최악의 경우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1년 6개월은 버틸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지만 정부군은 탈레반의 파죽지세에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쓸려나갔다.
2001년 시작된 아프간전은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전쟁이다.
아프간전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9·11 테러 직후인 10월 시작됐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의 배후로 지목하고 은신처를 제공했다고 판단한 아프간의 탈레반에 미국 인도를 요구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빈 라덴이 테러를 일으켰다는 증거를 내라며 거부했고, 결국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국과 아프간을 침공했다.
초창기 국제동맹군이 탈레반을 몰아붙이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는 등 승리하는 듯했지만 이내 장기전으로 변했다.
그러던 사이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인명 피해도 커졌다.
AP통신에 따르면 당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동시 전쟁을 치르면서 부채로 조달한 전쟁비용은 2조달러(약 2천338조원)가 넘는다. 오는 2050년까지 예상 이자 비용만 최대 6조5천억달러(약 7천59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중 아프간에 투입된 비용이 1조 달러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약 17만명은 아프간 정부군(6만6천명), 탈레반 반군(5만1천명), 아프간 민간인(4만7천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미군도 2천448명이 숨지고 미 정부와 계약을 한 요원 3천846명, 나토 등 동맹군 1천144명 등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물적, 인적 피해가 커지고 전쟁 피로감이 높아지다 보니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정권마다 아프간전 종식과 미군 철수를 내세웠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행정부 내에서 나오는 아프간전 철수 주장은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탈레반을 소탕할 수 있다는 국방부의 요구에 밀렸다.
오바마 정부 초기에는 오히려 수만명을 증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4년 아프간전 공식 종료를 발표하려 했다가 2015년 10월 이마저도 백지화했다.
그러던 중 아프간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세계 경찰로서 미국의 국제사회 역할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작년 2월 알카에다 근거지 제공 중단과 아프간 내 테러 상황 등을 조건으로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포함한 동맹군이 철군하는 평화협정을 탈레반과 맺었다.
실제로 이 합의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1만2천여 명에 달했던 아프간 미군을 지난 1월 퇴임 시 2천500명으로까지 줄였다.
새로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트럼프 시절의 평화합의를 지키느냐, 병력을 충원해 아프간전을 이어가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황이 급박하던 전날 아프간 관련 성명에서 자신이 2명의 공화당과 1명의 민주당에 이어 아프간 문제를 다루는 4번째 대통령이라고 밝힌 뒤 "나는 이 전쟁을 5번째 대통령에게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철군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신의 선택지를 좁혀놓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듯한 태도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아프간전 종식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전쟁 계속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1년 아프간전 개시에 찬성한 97명 의원의 한 명이었지만, 이후 탈레반이 되살아나고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면서 회의적 태도로 바뀌었다.
전쟁 승리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아프간 친미정권의 각종 부패와 취약한 군사력, 장남의 이라크전 투입 당시 겪은 가족의 아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을 낳았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 시절이던 2009년엔 아프간 군대 증원 문제에 대해 국방부와 충돌하고 회의 석상에서 긴 연설을 자주 해 당시 로버츠 게이츠 국방장관이 '중국식 물고문'을 한다고 불평했을 정도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전 철수 결정 이유로 빈 라덴 제거와 알카에다 궤멸이라는 애초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후 벌어진 정부군과 탈레반의 내전 상황까지는 미국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무려 20년간 치른 최장기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탈레반에 정권을 다시 내준 채 물러나는 것은 최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것이다.
더욱이 막판 탈레반의 기세에 눌려 현지 미군 기지와 대사관을 내버린 채 탈출하는 모양새를 보일 정도로 궁지에 몰린 것은 1975년 베트남전 패전 직전 치욕적 탈출 작전인 '프리퀀드 윈드 작전'(Operation Frequent Wind)과 대비되며 미국 전쟁사의 어두운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jbryo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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