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축하' 표현 없는 일왕 개회 선언…"총리관저 낙담"
교도통신 "관방부장관, 물밑 조율했지만 궁내청 의지 확고"
올림픽 개최로 지지율 제고 노리는 스가 총리에 악재될 듯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도쿄올림픽 개회 선언을 하면서 '축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올림픽 개최를 통한 지지율 제고를 노리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에서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일왕의 축하를 받지 못한 올림픽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23일 밤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 소재 올림픽 스타디움(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에서 "나는 이곳에서 제32회 근대 올림피아드를 기념하는, 도쿄 대회의 개회를 선언한다"며 올림픽 개막을 선포했다.
올림픽 헌장에는 개막 선언은 국가원수가 읽는다고 규정돼 있고, 영문 헌장엔 '셀러브레이팅'(celebrating)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정해져 있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가 공개한 일본어 번역에서 '셀러브레이팅'은 '이와우'(祝う·축하하다)로 표현돼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24일 전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 개회 선언 때 당시 히로히토(裕仁) 일왕도 이 표현을 사용하며 올림픽 개회를 선언했다.
나루히토 일왕이 조부가 사용한 '축하'라는 단어 대신 '기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열리는 올림픽임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당수 일본 국민이 도쿄올림픽 개최에 따른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하는 상황에서 축하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일왕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는 축하라는 단어를 쓰면 일왕이 코로나19 재난 속 도쿄올림픽을 축복하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궁내청 등에서 제기돼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가 협의해 기념이란 표현으로 정해졌다고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궁내청은 일본 왕실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이다.
도쿄신문은 축하를 기념으로 바꾼 것에 대해 "이례적인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교도통신은 "올림픽에서 정권 부양을 목표로 하는 총리관저의 낙담이 크고, '폐하(일왕)의 불신의 표시'라는 목소리도 커진다"고 진단했다.
통신에 따르면 스기타 가즈히로(杉田和博) 관방부장관은 물밑에서 종전과 같은 축하 표현을 하도록 니시무라 야스히코(西村泰彦) 궁내청 장관과 조율을 계속했다.
그러나 궁내청 쪽 의지가 확고했고, 스가 총리도 "궁내청이 결정한 것에 참견할 수 없다"고 반응했다고 한다.
총리관저의 한 소식통은 "정권의 코로나 및 올림픽 대응에 대한 폐하의 불신의 표시일 것"이라며 어깨를 떨구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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