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가 높인 '탄소 장벽'…철강·車 등 국내 산업에 직격탄
탄소국경세로 철강 수출감소 우려…車업계는 전동화 가속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세계 첫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을 포함한 유럽연합(EU)의 대규모 탄소 배출 감축 계획은 국내 산업계에도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탄소 배출량이 많고 대(對)EU 수출물량도 많은 철강업계는 연간 수출액의 약 5%를 관세로 더 내고, 수출이 약 12%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동차업계는 전기차·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전환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료에 탄소세가 적용되는 항공·해운업계 역시 지출 증가가 예상된다.
◇ 철강, 탄소국경세로 관세 부담 늘고 수출 줄 듯
15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관련해 우리나라는 철강업계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철·철강의 대EU 수출액은 15억2천300만달러, 수출물량은 221만3천680t으로 제도가 적용되는 5개 품목(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중 가장 많다.
EY한영회계법인은 올해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3년 EU가 탄소국경세를 t당 30.6달러로 부과할 경우 철강업계는 약 1억4천190만달러(약 1천600억원)의 탄소국경세를 내야 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2019년 우리나라가 EU에 수출한 물량(278만3천801t)과 이로 인한 탄소 배출량(463만5천721t)을 추산한 뒤 EU의 배출권거래제 및 역내 탄소세 규제에 포함된 탄소가격을 적용해 계산한 값이다.
우리나라 철강의 2019년 총 EU 수출액은 약 3조3천억원으로, 수출액의 약 5%만큼을 탄소국경세로 지출하게 되는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비금속광물제품과 1차 철강제품에 탄소국경세가 부과될 경우, 철강제품의 수출이 11.7% 감소할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철강사들의 대 EU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당위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무역장벽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EU와의 국가 간 협의를 통해 국내 탄소 배출 감축 제도를 동등하게 인정받도록 노력하고,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기술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 외에 알루미늄과 비료 업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알루미늄의 작년 기준 대EU 수출액은 1억8천600만달러, 수출물량은 5만2천658t로 철강 다음으로 많다. 같은 기간 비료의 대EU 수출액은 200만달러, 수출물량은 9천214t다.
시멘트 업종은 탄소국경세 적용 품목이긴 하지만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국내 업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유럽 지역에 시멘트 관련 제품을 수출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현재 내부적으로 시멘트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태라 남는 물량을 수출하는 상황"이라며 "국내 시멘트 업계에서 유럽으로 수출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제조업 위주 산업구조로 탄소집약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탄소국경조정세가 부과되면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많은 철강, 알루미늄 등의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EU 제도가 국제무역 규범 원칙을 해치지 않도록 미국과 인도, 러시아 등 관련국과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국내에서 운영 중인 탄소 저감 제도를 근거로 EU 제도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탄소배출을 감소시키는 기술혁신에 대한 인센티브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친환경차 전환 속도…항공·해운은 비용 부담↑
자동차업계는 2035년부터 EU 내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 내연기관 차량을 조기에 단종시키려는 EU의 방침에 다소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다만 유럽의 탄소배출 규제 강화는 예견된 수순인데다 이미 업체별로 전동화 전략을 세워 추진 중인 만큼 당장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정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이번 EU의 제안이 실현되려면 27개 회원국과 유럽의회의 협상, 승인이 필요한 데다 국가별로 탈탄소 로드맵이 다르기 때문에 당분간은 완성차업계도 EU 내부 협의 과정과 입법 절차 등을 예의주시하며 각자 전동화 전략을 추진해 나갈 전망이다.
현대차[005380]는 2025년 전기차 56만대 판매를 달성하고, 2040년까지 유럽, 미국, 중국 등 핵심 시장에서 제품 전 라인업을 전동화하겠다는 종전의 전략을 차질없이 이행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기아[000270] 역시 유럽과 국내, 북미, 중국 등 주요 선진시장에서 2030년 85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전기차 판매 비중을 34%까지 끌어올리는 종전 목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할 계획이다.
XM3 수출에 사활을 건 르노삼성차는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를 고려해 XM3의 하이브리드 모델도 함께 수출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수출 물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XM3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유럽의 탄소 규제는 이미 미국 등에 비해 강화돼 있어 유럽에 수출하는 제품 포트폴리오가 전기차 등 친환경차로 구성된 상태"라며 "유럽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완성차 업체의 경우에는 판매 물량 중에서 현지 생산 비중이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민철 한국자동차협회 통상협력실장은 "아직 각국 정부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고 국가별로 정확한 정책이 나오지 않아 당장 자동차 업계에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완성차 업계가 전동화 전략 가속화에 열을 올리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U의 탄소 배출 감축 계획에는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항공·선박 연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국내 항공업계는 이에 따른 영향이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세금 부과 대상이 EU 내 출발·도착하는 항공편으로 한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항공사들은 탄소 배출 절감을 위한 바이오 항공유 활성화에 대비하고, 추후 EU 외 지역으로 탄소 배출 관련 정책이 확대되는지 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선·해운업계는 EU의 환경 규제로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가 확대됨에 따라 무탄소·저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의 시장 도입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조선업계엔 고부가가치 LNG선박 발주가 늘게 돼 호재이지만, 해운업계는 연료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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