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아이티, 대통령 암살에 더욱 안갯속…권력 공백 우려(종합)
의회·대법원장 공백 속 임시 총리가 일단 국정 전면에
오는 9월 대선·총선 예정…단기간 내 정국 안정 기대 어려워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카리브해 아이티의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괴한에 살해되면서 아이티는 더 큰 위기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됐다.
당장 누가 국정을 책임질지도 명확하지 않아 단기간 내에 안정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날 새벽 모이즈 대통령이 사저에서 살해된 뒤 일단 국정 전면에 나선 것은 클로드 조제프 임시 총리다.
그는 비상 각료회의를 열고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국민에게 침착함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아이티 관보 특별호는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총리와 내각이 통치한다고 밝혔다. 아이티의 대선은 오는 9월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조제프 총리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87년 판 아이티 헌법엔 대통령 유고 시에 대법원장이 권한을 승계하게 돼 있다. 이후 2012년 개정된 헌법에서는 의회가 투표를 통해 임시 대통령을 뽑는 것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2012년 개정 내용이 프랑스어로는 반영됐지만, 또 다른 공용어인 크레올어로는 번역되지 않아 두 헌법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그러나 두 헌법을 모두 적용해도 당장 모이즈 대통령의 후계자를 찾긴 불가능하다.
1987년 헌법 기준으로 대통령직 승계 대상인 르네 실베스트르 대법원장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했다. 당초 이날 대법원장의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었다고 미국 CNN은 전했다.
의회도 사실상 공백 상태라 의회의 임시 대통령 선출도 기대할 수 없다.
아이티 정국 혼란 속에 의회 선거가 제때 치러지지 못하면서 현재 하원의원 전체, 상원의원 3분의 2가 임기가 끝난 상태라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지난 4월 전임 총리의 사임 이후 '임시' 꼬리표를 달고 취임한 조제프 총리도 사실 퇴임을 앞둔 상태였다.
모이즈 대통령은 지난 5일 새 총리로 신경외과 의사 출신의 아리엘 앙리를 지명했다.
조제프 총리는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당분간 자신이 총리직을 맡는 것으로 앙리 지명자와 합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앙리 지명자는 별도 인터뷰에서 "예외적인 상황이고 약간의 혼란이 있다"며 "내가 현직 총리"라고 말했다고 AP는 전했다.
장 윌네르 모랭 아이티 법관협회장은 CNN에 아직 의원 3분의 1이 남아있는 상원의 조제프 랑베르 의장이 대통령직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든 대선 전까진 권력 공백이 우려되며, 아이티의 혼란은 당분간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60%가 빈곤층인 카리브해 극빈국 아이티는 최근 몇 년간 극심한 정치·사회 혼란을 겪어왔다.
야권을 중심으로 모이즈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도 거세진 가운데, 지난 2월에도 모이즈 대통령이 자신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며 야권 인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하기도 했다.
모이즈 대통령은 야권의 반대 속에서도 총리직을 없애고 대선 방식을 개편하는 내용 등의 개헌을 추진해 오는 9월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었다.
미뤄진 의회 선거와 대통령 선거도 함께 치러지기로 돼 있었다.
조제프 총리는 이날 AP에 선거가 예정대로 치러져야 한다며 여야와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이 사망한 상황에서 개헌 국민투표도 그대로 진행될지는 불확실해졌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