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2차대전 중 소련 공적 폄하 금지법' 채택…푸틴 대통령 발의
"옛 소련군과 나치독일 행동 동일시 용납안돼"…'역사논쟁 억압' 비판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대독전)과 관련 옛 소련과 나치 독일이 모두 책임이 있다는 식의 공개 비판을 금지하는 법률을 채택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941~1945년 대조국전쟁(대독전) 승리 기념법' 개정안에 서명했다.
푸틴 대통령의 제안으로 입안돼 의회 승인 절차를 통과한 법안에 푸틴이 최종 서명하면서 해당 법률이 발효하게 됐다.
법률은 옛 소련 지도부나 소련군 지도부의 목표, 결정, 행동 등을 나치 독일이나 유럽 추축국(이탈리아, 루마니아 등)과 공개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 나치 독일 격퇴에서 옛 소련이 한 결정적 역할이나 유럽 국가들을 나치 압제에서 해방하는 과정에서 소련이 한 역할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금지된 내용을 담은 공개 연설이나 공연 작품, 언론 보도 등이 규제 대상이 된다.
법률을 위반한 개인이나 단체는 과태료 부과와 같은 행정 처분을 받는다.
법률 설명문은 "최근 들어 언론, 심지어 러시아 언론에서도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 지도부와 소련군 지도부의 목표, 결정, 행동들을 나치 독일 지도부나 나치군의 목표나 결정, 행동들과 동일시하는 근거 없는 비하성 발언들이 게재되거나 방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국(러시아)의 수호자나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행동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2차대전 전범 재판) 판결에 따라 범죄자로 인정된 자들의 행동을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안 제안자들은 "새 법률이 대조국전쟁에 관한 역사적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자들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법률 제정은 옛 소련이 독소불가침 조약(1939년) 체결로 나치 독일의 전쟁 개시를 도왔고, 나치와 폴란드 등을 분할 점령했으며, 전쟁 과정에서도 나치군에 못지않은 악행을 저지른 경우가 있었다는 등의 소련 책임론을 금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새 법률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자유로운 논쟁을 억압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론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는 1812년 모스크바를 침공했던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과의 전쟁을 '대(大)조국전쟁'이라고 부르며 두 전쟁 승리를 민족적 자부심의 근거로 삼고 있다.
군인뿐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세계 제패를 꿈꾸던 정복자들을 무찌르고 러시아와 세계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다.
2차대전 승전의 주역도 2천700만 명이 숨지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끝까지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대조국전쟁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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