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정치 달인 도쿄지사…올림픽·코로나 중대국면에 왜 입원?
"피로 누적"…도쿄 의회 선거·정국과 맞물려 억측 나돌아
'선거운동 자제 당부' 說…아소 "스스로 뿌린 씨앗" 독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사의 입원이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낳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가운데 도쿄올림픽 개막이 임박했고 도쿄도 의회 선거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도의 행정 수장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도쿄도는 피로 때문에 요양 중인 고이케 지사의 입원이 길어져 다라오 미쓰치카(多羅尾光睦) 부(副)지사의 직무대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날 발표했다.
도쿄도는 이런 조치가 특정한 질병의 검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피로가 해소되지 않았다는 의사의 판단에 따른 것이며 고이케 지사가 언제 직무에 복귀할지는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고이케 지사는 이달 22일 입원했다.
당시 도쿄도는 입원 사실을 밝히며 고이케 지사가 '이번 주에 공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일주일 정도 입원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공백이 길어지는 양상이다.
고이케 지사가 입원할 당시 도쿄도는 '코로나19 대응이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준비 등 중요한 업무가 겹쳐 최근 1주일 정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과도한 피로로 인해 요양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고이케 지사는 1952년생이며 다음 달에 만 69세가 된다.
피로 누적으로 입원했고 원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도쿄도의 설명이지만 중대한 시기에 단순히 피로 때문에 일주일 넘게 입원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긴급사태를 해제한 후 도쿄를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도지사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또 다음 달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한 달도 남지 않았고 과제는 산적했다.
도쿄도 의회 선거 운동이 25일 시작됐고 내달 4일 투·개표 예정이라서 지역 정치도 중요한 국면을 맞고 있다.
고이케 지사가 4년 전 설립을 주도한 지역 정당인 '도민(都民)퍼스트(First)회(會)'가 도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유지할지가 이번 선거의 관건이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도민퍼스트회에 밀렸던 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다수당을 탈환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정세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고이케 지사의 입원 연장 발표는 공교롭게도 일본 언론의 분석 결과가 나온 날 이뤄졌다.
도민퍼스트회의 특별고문인 고이케 지사가 입원을 연장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불리한 국면에서 선거 운동 등에 자연스럽게 관여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고이케와 친분이 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이 고이케 지사에게 이번 선거에서 도민퍼스트회를 지원하지 말라는 것과 지원하더라도 자민당이나 연립 공명당도 응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설이 당내에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고이케 지사를 향해 내뱉은 독설도 논란을 낳고 있다.
아소 재무상은 25일 도쿄의회 선거에 출마한 자민당 후보를 지원하는 연설을 하다가 고이케 지사에 입원에 대해 "스스로 뿌린 씨앗"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민퍼스트회에 "국회의원이 없으므로 (정부에)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따라서 지사 자신이 (나서서) 한다. 피로로 쓰러졌다. 동정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이케가) 그런 조직으로 만들었으니까"라며 이같이 언급했다.
아라키 지하루(荒木千陽) 도민퍼스트회 대표는 아소의 발언에 대해 "잠잘 시간도 아끼며 도쿄도를 위해 행동해 온 상대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은 발언이다. 단호하게 항의한다"며 반발했다.
아소가 평소 거친 입담으로 악명이 높기는 하다.
그가 굳이 입원 중인 지자체장을 공격하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서는 자민당 내 상황이나 정계 인사 간 친소 관계가 주목받는다.
가을에 중의원 선거를 앞둔 가운데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간사장을 비롯한 요직이나 차기 내각 구성을 두고 물밑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아소 부총리 입장에서는 연임을 노리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인 고이케 지사가 눈엣가시였을 가능성도 있다.
아소의 파벌은 아베 전 총리가 몸담았던 호소다(細田)파에 이어 자민당 내 2위의 세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규모가 더 작은 파벌을 이끄는 니카이가 장기간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이케는 코로나19 대응에서 정부보다 앞서 나가거나 쓴소리를 하는 등 자신을 부각하는 움직임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나 이를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내각을 곤혹스럽게 한 적도 있다.
그는 보여주기를 바탕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이른바 '극장 정치'에 능란하며 일본의 첫 여자 총리로 가장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 고이케가 결정적 시기에 자리를 비운 이유가 무엇인지, 언제 복귀할지, 현 상황에 어떤 태도로 임할지 등이 향후 정국 흐름과 맞물려 주목된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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