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프랑스 전역을 달린다…TGV 식당칸에서 한식 메뉴 판매
한국계 셰프 피에르 상 부아예, 프랑스 철도공사와 협업
비빔밥에 식어도 괜찮은 닭고기 넣어…"나는 도전을 좋아한다"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닭고기를 곁들인 비빔밥, 두부를 넣은 파스타, 김치를 첨가한 렌틸콩 샐러드…. 한식이 프랑스 전역을 누비는 열차에 탑승했다.
올해 11월까지 파리,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스트라스부르, 니스 등을 연결하는 고속철 테제베(TGV)와 저가 고속철 위고(Ouigo) 식당칸에서 '한국의 맛'을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7살 때 프랑스로 입양된 피에르 상 부아예(41) 셰프가 프랑스 철도공사(SNCF)와 협업을 시작하면서다.
SNCF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3월부터 폐쇄한 식당칸 영업을 이달 9일 재개하면서 새로운 메뉴로 한식을 선택했다.
가격은 13.9유로(약 1만9천원). 지난 2주 사이 파스타는 1만4천개, 비빔밥은 1만2천개, 샐러드는 9천개가량 판매됐다.
지난 22일(현지시간) 파리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한 열차 안에서 만난 부아예 셰프는 자신이 만든 메뉴를 하나하나 소개하며 더 많은 프랑스인에게 한국 음식의 매력을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며 환히 웃었다.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부아예 셰프는 다른 대도시뿐만 아니라 시골까지 구석구석 오가는 열차에서 한식을 제공한다는 점이 무척 뿌듯하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유명 셰프들과 손잡고 여행에 미식을 접합하는 마케팅을 펼쳐온 SNCF는 지난해 9월 부아예 셰프에게 연락해 협업을 제안했다.
SNCF가 세계 맛집 지침서 '기드 미슐랭'(한국명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을 받지 않은 레스토랑 셰프와 함께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놀라운 제안이었지만 승낙하기까지는 고민이 깊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바로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과 도시락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하는 게 아니다 보니 맛을 보장할 수 있을까 걱정이 들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한국인 아내의 설득에 마음을 굳혔다고.
SNCF에 음식을 공급하는 업체와 레시피를 주고받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 끝에 기차 안에서도 먹기 좋은 메뉴가 탄생했다.
부아예 셰프는 차갑게 먹어도 괜찮은 음식을 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비빔밥에 돼지고기나 소고기가 아닌 닭고기를 넣은 이유다. 지나치게 맵거나 자극적인 맛도 피하려고 애썼다.
그간 해온 요리와는 결이 무척 달랐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아주 좋은 도전이었다"며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SNCF는 왜 부아예 셰프를 택했을까. 부아예 셰프가 한국의 맛을 가미해준다면 여행의 즐거움이 한층 더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스테파니 코스 SNCF 마케팅 이사는 설명했다.
코스 이사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분 없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이용하는 기차에는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음식이 필요하다며 부아예 셰프의 요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부아예 셰프는 2011년 프랑스 요리 경연 프로그램 '톱 셰프'에서 결선에 올라간 최종 3인으로 뽑히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2년 파리 오베르캉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식당 '피에르 상' 1호점을 열었고, 지금은 다섯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스스로 소개하는 부아예 셰프는 쌈장과 같은 한국 재료를 활용한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2014년 식당에서 비빔밥을 메뉴로 판매하다가 2017년 비빔밥 포장과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피에르상 익스프레스'를 차렸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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