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부패에 지친 페루 '좌클릭'…중남미 좌파물결 다시 퍼질까
중남미 전·현 좌파 지도자들, 카스티요 당선에 환호
칠레·콜롬비아·브라질서 우→좌 정권교체 여부 주목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좌파 초등교사 페드로 카스티요(51)의 페루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까지는 투표 후 6주가 넘게 걸렸지만, 중남미 좌파 인사들은 축하 인사를 뒤로 미루지 않았다.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전 에콰도르 대통령 등은 물론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현직 좌파 대통령들도 대선 직후 때 이른 축하를 했다.
이들은 페루에서 오얀타 우말라 전 정권 이후 5년 만에 다시 좌파 정권이 들어선 것을 제 일처럼 기뻐했다.
카스티요의 당선은 대선 초반만 해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의외의 결과지만, '전조'는 있었다.
생존 전직 대통령 대부분이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았을 정도로 정치권 부패가 만연한 페루는 2018년 이후에도 두 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부패 스캔들로 탄핵당했다.
인구 대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큰 타격을 받으면서 빈곤과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등장한 카스티요는 정치 경력이 거의 없으니 부패와도 거리가 먼 청렴한 이미지였고, 문맹의 농부 부모 아래 태어난 서민의 대표였다.
카스티요도 선거 기간 자신이 부패한 기득권층과 대비되는 청렴하고 소박한 후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다.
구리 등 풍부한 광물로 발생하는 부(富)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헌도 약속했다.
코로나19로 심화한 빈곤과 빈부격차, 고질적인 부패는 중남미 대부분 나라가 공통으로 겪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들도 페루와 같은 선택을 할 가능성도 있다.
중남미에선 2018년 멕시코, 2019년 아르헨티나가 차례로 우파에서 좌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지난해 볼리비아에서도 1년 만에 좌파가 재집권했다.
일방적인 흐름만은 아니어서 지난해 우루과이에선 15년 만에 우파 정권이 들어섰고, 올해 대선을 치른 에콰도르에서도 우파 후보가 당선됐다.
페루의 경우 중도우파 성향의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중도하차하고 여러 명의 임시 대통령이 자리를 바꾸는 과정에서 정권의 성향이 무의미해지긴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좌파 후보를 택했다는 것은 꽤 의미가 있다.
페루의 선택이 중남미의 공통적인 추세가 될지 가늠하기 위해 지켜봐야 할 것이 올해 11월 칠레, 내년 5월 콜롬비아 대선이다.
현재 우파 정권이 들어서 있는 칠레와 콜롬비아는 2019년 이후 사회 불평등 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사태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현 정부 지지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상황이 대선까지 유지될 경우 정권교체 가능성이 크다.
칠레는 이미 지난 5월 제헌의회 선거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를 거둔 바 있다.
마찬가지로 내년 10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 역시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자이르 보우소나루 극우 정권에 대한 반감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이들 나라에 차례로 좌파 정권이 들어설 경우 1990년대 후반 시작돼 2000년대 원자재 붐을 타고 확산했던 중남미의 좌파 물결, 이른바 '핑크 타이드'가 재현할 수 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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