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체트 헌법과 결별하는 칠레, 새 헌법 쓸 제헌의회 선출
15∼16일 선거 통해 155석 제헌의회 구성…성비 균형·17석은 원주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낡은 헌법을 버리고 새 헌법을 만드는 칠레가 오는 15∼16일(현지시간) 헌법 초안을 쓸 제헌의회를 선출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뽑힌 155명의 제헌의원은 앞으로 칠레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중책을 맡게 된다.
◇ 지하철 요금 인상 항의 시위가 이끈 새 헌법 제정
칠레 새 헌법 제정의 시작은 2019년 10월 칠레 사회를 뒤흔든 대규모 시위였다.
수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불붙은 시위는 교육, 의료, 노동, 연금 등 사회 불평등을 부추기는 사회제도 전반에 대한 반발로 확대했고, 서른 명 넘는 사망자를 낳았다.
격렬했던 당시 시위 과정에서 현행 헌법 폐기와 새 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현행 헌법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1973∼1990년)인 198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으나 근간은 유지됐다.
시위대는 독재시대의 유물이면서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행 헌법이 공공서비스 민영화와 이로 인한 불평등 심화에 책임이 있으며,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결국 시위대의 거센 요구를 받아들여 새 헌법 제정 국민투표를 치르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국민투표에선 1년 전 거리에서 쏟아져 나온 변화를 향한 목소리가 수치로 고스란히 드러났다.
78%의 국민이 새 헌법 제정에 찬성했고, 79%가 기존 의원들을 배제한 채 새로 제헌의회를 구성하길 원했다.
칠레 국민은 피노체트 헌법과 결별하고 새 헌법과 함께 새 시대를 맞길 원했고, 기성 정치인들이 아니라 직접 뽑은 국민의 대표가 그 초안을 쓰길 바란 것이다.
◇ 세계 최초 성비 균형 구성…원주민 몫도 할당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이번 제헌의회 선거엔 총 1천373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중 95명은 원주민이고 나머지 후보 중 649명이 남성, 629명이 여성이다.
총 155석의 의석 중 17석은 마푸체, 아이마라, 케추아 등 원주민들에게 인구 구성에 따라 할당돼 원주민들이 자체 선출한다.
주목할 점은 전 세계 최초로 남녀 성비를 맞춰 구성되는 제헌의회라는 점이다.
155명 중 남성이든 여성이든 78명을 넘지 않게 조정해 각각 78명 대 77명의 성비를 유지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칠레 언론은 설명했다.
2019년 칠레 시위 과정에선 만연한 폭력 등의 항의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한쪽 눈을 잃은 간호사 나탈리아 아라베나(26)를 비롯해 많은 여성 후보가 다양한 계층을 대변하며 제헌의원에 도전하고 있다.
◇ 좌파 우세 관측…9+3개월 초안 작성 후 국민투표
이번 제헌의회 선거는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치러지는 것이기도 하다.
칠레에선 최근 좌파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우파 피녜라 대통령이 두 차례씩 자리를 바꿔가며 집권했다.
시위 사태를 거치며 표출된 변화 요구와 바닥 수준인 피녜라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할 때 이번 대선에서도 정권 교체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초전인 이번 제헌의회 선거에서도 교육, 의료, 복지 등에 대한 정부 지출 확대와 자원의 국가통제 강화 등을 주장하는 좌파 정당 후보들이 우파 성향 후보들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우리시오 모랄레스 칠레 탈카대 교수는 다만 좌파가 경제 등 여러 이슈 등에서 상당히 분열돼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좌파가 다수라고 해서 헌법 작성 과정에서 우파를 압도하진 않을 것이라고 AFP통신에 말했다.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의회는 앞으로 9개월간 토론을 거쳐 새 헌법 초안을 마련한다. 이 기간은 3개월 더 연장될 수 있다.
이렇게 탄생한 초안이 국민투표를 거쳐 승인되면 비로소 칠레 국민은 새 헌법을 갖게 된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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