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 고공행진에 건설·제조업 비상…車·가전가격 오를까
철광석 가격 t당 사상 첫 200달러 돌파
건설업계, 자잿값 급등에 철근 품귀현상까지
조선사들, 후판 가격 인상에 수익성 악화 우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보경 홍국기 김영신 권희원 기자 = 최근 철광석 등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건설·제조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원자잿값 인상은 전 세계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지만 건설, 자동차, 조선업체 등 수요 업체들에는 원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고 원가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당장 반영할 수도 없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제품 가격을 밀어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 철광석 가격, t당 200달러 첫 돌파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 칭다오항 기준(CFR) 철광석 가격은 지난 6일 기준 t당 201.88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t당 200달러를 돌파했다. 철광석값은 지난 3월 t당 150달러대였으나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글로벌 철강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급격한 생산 위축으로 재고가 줄어든데다, 세계 1위 철강 생산국인 중국이 환경정책을 강화하면서 생산량을 감축해 수급 불균형이 일어난 것이다.
철광석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철강 제품 가격도 뛰고 있다.
자동차·가전 등의 소재로 쓰이는 기초 철강재인 열연강판 유통 가격은 1월 말 t당 88만원에서 4월 말에는 110만원까지 올랐다.
강관 가격도 이 기간 t당 95만원에서 110만원으로 뛰었고, 냉연강판은 t당 108만원선에서 유통되고 있다.
선박을 만들 때 필요한 후판(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 유통 가격은 110만원선에서 형성됐다. 후판 가격이 100만원을 돌파한 것은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 건설업계, 자잿값 급등에 철근 품귀현상까지
원자재값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은 곳은 건설업계다. 철근의 원재료인 철스크랩(고철) 가격이 오르면서 철근 유통가격도 덩달아 뛰었기 때문이다. 연초 t당 70만 원(SD400, 10㎜)이던 철근 가격은 이달 7일 93만원까지 올랐다.
건설업계에서는 철근 t당 100만원을 넘겼던 2008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A사 관계자는 "철스크랩 가격이 치솟으면서 거푸집 제작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며 "물량 확보도 큰 문제지만, 지난해 계약 당시와 비교해 30% 이상 오르면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국내 아파트 분양 증가로 철근 품귀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주요 자재·공종의 수급 전망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제때 자재를 구하지 못해 공사 지연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달청마저 철근을 구하지 못해 일부 현장에서 관급 자재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자잿값 상승과 수급 불균형이 매우 심각해 건설사마다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자잿값 상승은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만약 이런 부분들이 분양가에 반영되지 못하면 시공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 조선업계, 후판 가격 인상에 수익성 악화 우려
모처럼 수주 풍년을 맞은 조선업체들도 수익성 악화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최근 몇 년간 조선시황 악화를 이유로 후판 가격을 동결해온 철강업체들이 올해 들어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다.
포스코[005490]와 현대제철[004020] 등 국내 주요 철강업체들은 한국조선해양[009540]과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042660] 등 '빅3' 업체들과의 가격 협상에서 t당 10만원 이상을 인상하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체들은 철광석 가격 상승과 선박 수주 증가 등을 이유로 '울며 겨자 먹기'로 인상에 동의했다는 후문이다.
조선업계는 수주 증가가 영업 실적에 반영되기까진 1~2년의 세월이 걸리지만 후판가격 상승은 곧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일례로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척의 가격을 9천만 달러(1천억원)라고 가정할 때 이익률은 약 1% 정도라 수주 시 10억원의 수익이 남는다.VLCC 1척에는 약 3만t의 후판이 사용되는데 t당 5만원 가격이 상승하면 후판비용으로 15억원이 추가돼 결국 적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업계 특성상 수주가 바로 매출이나 영업이익에 반영되지 않는 반면 후판 등 강재가 상승은 바로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면서 "수주 풍년에도 조선업계가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 자동차·가전업계, 제품 가격 인상 압박 커져
완성차와 가전업계도 철강제품 가격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반적으로 1.7∼2t짜리 중·대형 차량에는 평균 1t의 철강재가 들어간다. 자동차 무게의 절반 이상이 철강재 무게인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최근 철강재를 고장력 강판 등의 가벼운 소재로 대체하기도 하지만 가장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안전도가 높은 원자재는 결국 철강재"라며 "철강재 가격이 오르면 어느 정도까지는 제조사에서 자체적으로 흡수하겠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가격 인상을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완성차 가격에서 원자재 비용은 일반적으로 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반도체가 들어가는 부품 가격의 상승과도 맞물리면서 자동차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동차 판매가 올해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철강재뿐 아니라 타이어와 희토류 등 다른 원자재 가격도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반도체 가격도 많이 오른 상태"라며 "올해 10월쯤 출시되는 신모델부터 원자재 가격 인상이 반영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철강재 가격이 올랐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가격 인상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철강재 가격이 오르면 영업이익률 하락의 압박을 받으며 경영 환경이나 판매 환경이 어려워질 수는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당장 가격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005930]와 LG전자[066570] 등 가전업계는 생산 원가 중 철강재 비중이 높지 않아 당장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을 악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철강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바로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수익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라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전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매 단가와 에너지 등을 절감하고 공급망·공정 혁신을 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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