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군부 아래선 일 못해"…짐 싸는 미얀마 공무원들
파업하고 시민불복종운동 참여…월급 끊기고 식량 부족해도 버텨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우리 모두 가난해요. 갈 곳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파업할 겁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반대해 파업한 공무원, 준공무원들은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관사를 비우라는 명령에 줄줄이 짐을 싸 집을 떠나면서도 저항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24일 이라와디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20일 군부는 만달레이의 철도노동자들에게 "월요일부터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닷새 안에 관사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만달레이의 철도직원 주택 단지 내 450가구, 1천명 이상이 주말 동안 짐을 싸서 집을 나왔다.
10년 넘게 이곳에 살다 짐을 싼 50대 여성은 "집을 떠나면서 우리 모두 눈물을 흘렸지만, 그 눈물은 슬프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라 군부의 탄압에 분개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무장한 군부에 대항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군부가 몰락할 때까지 끝까지 시민불복종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관사를 떠나는 철도노동자와 가족들은 눈물을 훔치며 이삿짐을 들고 언제 돌아올지 모를 길을 떠났다.
강아지를 안고 떠나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가족들에게 안겨 친인척 집이나 임시거처로 옮겼다.
만달레이뿐만 아니라 양곤의 철도노동자와 가족도 1천명 이상 업무 복귀를 거부하고 관사를 떠났다.
양곤 철도노동자 가족은 "군경은 업무에 복귀하면 관사에 계속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90% 이상이 군부 아래서 일하느니 집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몇 시간 안에 집을 비우라는 명령 때문에 옷가지와 식량만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23일 오전에는 몬주의 몰메인(Mawlamyine) 철도노동자 140명이 가족들을 데리고 관사를 떠났다.
파업에 동참한 정부 병원 소속 의사, 간호사들도 줄줄이 관사를 비웠다.
네피도의 정부 병원만 해도 의료인 400명 이상이 업무 복귀 명령을 따르지 않고 관사에서 나왔다.
군부는 이들의 월급을 끊고,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물론 당장 주택 지원을 끊었다.
시민불복종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한 의사는 "군부는 어떻게든 시민불복종 운동의 기세를 꺾으려 하지만, 실패했다"며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의 90% 이상이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가 지난달 1일 쿠데타를 일으킨 뒤 수 만명의 공무원들이 군부의 여러 차례 업무 복귀 명령과 관사 퇴거, 해고 위협 속에도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 중이다.
1천200여개 국·공립 병원 가운데 300여곳이 직원들의 파업으로 문을 닫았고, 40여개 국·공립 대학 교직원도 "반 쿠데타"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미얀마경제은행 등 국영은행 직원, 교사, 각 부처 공무원들은 물론 미얀마 국영철도사(MR) 소속 직원 90%가 파업하고, 민간항공청의 관제사와 직원들도 출근을 거부하고 군부에 저항했다.
이들은 "정부가 같은 임금을 주더라도 군부독재 체제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다.
군부는 시민불복종 운동에 앞장선 의사, 교사, 철도노동자, 정부 부처 국장 등 60명 이상을 재판에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들은 파업한 공무원들이 생계 때문에 걱정하거나 이탈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단체를 만들어 숙소, 식량, 현금 지원에 나섰고 특히 해외에 사는 미얀마인들이 우회적으로 외화를 지원금으로 송금하고 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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