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별 모양 세포, 새로운 '수면 조절' 기능 발견
성상교세포 활성화→뇌 주파수 낮춰 수면 유도
Gi·Gq 수용체, 수면의 양과 질 제어…저널 'eLife'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인간은 삶의 3분의 1을 잠자는 데 할애하면서도 수면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잘 모른다.
예를 들면 어떤 이는 수면을 방해하는 환경에서도 깊게 잠들지만, 어떤 이는 밤마다 몇 시간씩 뒤척이며 잠을 설친다.
사람마다 피로가 풀렸다고 느끼는 수면량이 다른 이유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뇌에서 흔히 발견되는 성상교세포(astrocytes)가 수면의 양과 질을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은 성상교세포의 특정 수용체가 이런 수면 조절에 관여한다는 걸 확인했다.
별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은 성상교세포는 원래 뉴런(신경세포)에 대한 영양 공급 및 이온 농도 조절, 노폐물 제거 등을 하는 거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뇌 신경회로를 직접 제어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이번 연구를 수행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 연구진은 최근 저널 '이라이프'(eLif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23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뇌의 성상교세포를 조작해 수면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입증한 건 처음이다.
기본적으로 성상교세포는 뇌의 뉴런을 지지하는 교질 세포(glial cell)의 한 유형이다.
전체 뇌세포의 25~30%를 점유하는 성상교세포는 수많은 시냅스(신경 접합부)를 통해 뉴런이 서로 주고받는 신호를 엿들을 수 있다고 한다.
뇌 전반에 분포하는 성상교세포는 또한 특별한 채널로 연결된 통합 네트워크 기능도 하는 거로 알려졌다.
깨어 있을 때 인간의 뇌는 번잡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이다. 수많은 뉴런이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생기는 불협화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잘 때 뇌는, 뉴런의 신호가 하나의 코러스처럼 모이면서 '서파 활성(slow-wave activity)' 상태로 변한다.
이 서파 전환 과정에 성상교세포가 관여한다는 게 이번 연구에서 새로이 밝혀진 부분이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키라 포스칸저 생화학 생물물리학 조교수는 "수면은 물론 수면 조절 장애를 보이는 질병에 대해서도 새로운 통찰이 될 수 있다"라면서 "어떤 질병은 이전에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성상교세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성상교세포를 활성화하는 약을 생쥐 모델에 투여하고 뇌의 서파 활성 상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했다.
뇌의 서파 활성은 지진계에 표시되는 지진의 진동과 매우 흡사하게 나타난다.
뇌가 깨어 있을 땐 짧고 격한 신호가 촘촘히 이어지다가, 특정한 수면 단계에 접어들면 신호가 느려지면서 마루가 높고 골이 깊은 고리 형으로 바뀐다.
연구팀은 생쥐의 성상교세포를 자극하면 서파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생쥐가 잠든다는 걸 확인했다.
그 작용 기제도 후속 실험에서 드러났다.
성상교세포는 빼곡히 들어찬 수용체 분자로, 주변의 뉴런이나 다른 유형의 세포로부터 오는 신호에 반응했다.
이 중에서 Gi·Gq 두 수용체가 수면 조절에 직접 관여했다.
Gq 수용체를 활성화하면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더 깊게 잠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Gi 수용체를 활성화하면 수면 시간은 변하지 않으면서 더 깊은 잠을 잤다.
성상교세포의 이런 작용이 뇌 전반에 걸쳐 멀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밝혀졌다.
일례로 뇌 피질의 한 영역에서 성상교세포를 자극하면 멀리 떨어진 뉴런의 작용도 영향을 받았다.
연구팀은 성상교세포의 다른 수용체가 함께 작용하면 수면에 어떤 충격을 주는지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포스칸저 교수는 "성상교세포를 무신경하게 방치하는 바람에 도대체 무엇을 놓친 건지 모르겠다"라면서 "지금까지 수면 신경생물학에 많은 의문점이 쌓인 건, 우리가 엉뚱한 곳만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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