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아니라고? 경찰이 말리던 아버지 때리고 잡아갔다"
민병갑 교수, 위안부 영문서적 온라인 북토크
일본 강제동원 부정론에 '쐐기'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그 당시 나는 나이가 어리고 이뻤어. 잡히지 않으려고 숨었어. 그러나 일본 순경은 나를 내놓으라고 아버지를 때리고, 아버지 코에 주전자 물을 넣고… 그래서 나는 '아부지, 나는 간다'고 했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 파동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일본 우익의 역사 수정주의에 일침을 가하는 재미 한인 학자의 영어 서적이 나왔다.
민병갑 뉴욕시립대 퀸스칼리지 교수는 20일(현지시간) 자신의 저서 '한국의 위안부: 군 위안소, 잔혹성, 그리고 배상운동' 출판을 기념해 개최한 온라인 북토크에서 램지어 교수를 비롯한 강제동원 부정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난 1993년 황금주 할머니의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집을 상세히 분석하고 직접 인터뷰해 서적을 펴낸 민 교수는 네 가지 사실을 근거로 강제동원 부정론자들을 재반박했다.
우선 일본 내에서조차 강제동원을 증명하는 논문과 자료가 많이 있는데도 일본 우익들이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민 교수는 지적했다.
두 번째 근거는 동원 연령이다. 민 교수가 피해 할머니 103명을 분석한 결과 93%가 당시 매춘부 취업 가능 연령인 21세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이 중 8명은 당시 11∼12세에 불과했다.
민 교수는 "1932년 당시 일본법에도 매춘업에 종사할 수 있는 여성 나이는 21세 이상이라는 조항이 있었고, 일본이 가입한 3개 국제조약에도 21세 이상만이 매춘업에 종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21세 이상은 7명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106명(중복 동원 3명 포함) 가운데 자발적으로 위안소에 간 경우는 단 4명(4%)밖에 없다는 사실도 우익 주장에 배치된다. 민 교수 분석 결과 ▲ 취업사기 37% ▲ 집밖에서 유괴 또는 연행 17% ▲ 취업사기와 강요가 결합된 경우 15% ▲ 부모나 친척에 의해 팔려간 경우 15% ▲ 집 또는 가게에서 강제로 동원 12% 등이었다.
위안부 피해자의 직접 증언을 일본 정부와 우익이 부인하는 것도 법 원칙에 어긋난다고 민 교수는 진단했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는 원칙에 배치된다"며 "취업사기는 강제동원이 아니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형사법 원칙에 위배된다. 일본 우익의 주장은 법학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 교수가 북토크에서 유형별로 소개한 몇몇 피해자의 증언들은 램지어 교수 논문의 허구성을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청취자들을 숙연하게 할 정도였다.
전북 전주에서 16세의 나이로 끌려갔던 김영자 할머니는 어느 날 일본 순경이 집으로 자신을 데리러 왔다가 막으려던 부친을 고문하고 폭행했다며 "집집마다 다니면서 처녀들을 일본 군인들과 순경들이 데려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내가 가고 나서 며칠 안가 아버지가 죽었다고 들었다. 두드려맞고 그래서…"라고 덧붙였다.
부산에 살던 윤두리 할머니도 15세 때 부산 남부경찰서 앞을 지나다 일본 순사에 검거돼 부산 영도 제1위안소에 끌려갔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과 언니가 위안소로 찾아왔으나 일본군이 막아 말 한마디 나누지 못했다고 윤 할머니는 증언했다.
서울 출신의 최명순 할머니는 일본에 가면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한국인 브로커에 속아 모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떠났다가 강제로 일본군 장교의 첩이 된 후 이 장교의 아들이 자신을 위안소로 팔아넘기는 바람에 위안부 피해자로 전락하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고 민 교수는 전했다.
민 교수는 "위안소로 가는 도중에 감금, 폭행, 성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동원 방식에 관계없이 전부 다 강제동원이 되는 것"이라며 "미국 교과서에 위안부 사실을 넣으면 일본 우익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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