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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총격희생 한국인' 아들의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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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총격희생 한국인' 아들의 사모곡
美애틀랜타 총격참사 유일한 한국국적 희생자…"시신 인계 못 받아 답답"
"엄마 생전 늘 한국 그리워해…엄마의 '추억의 사진첩' 이젠 내가 간직"
"아시안 주로 희생, 계획된 인종범죄…변하지 않으면 또 반복돼"



(애틀랜타=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지금은 슬퍼할 겨를이 없어요. 엄마를 찾아 쉬게 해드리는 게 지금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어서 엄마 시신을 받아서 장례를 치르고 싶어요."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총격범의 난사에 하루아침에 모친을 잃은 아들 랜디 박(23)씨는 인터뷰 내내 눈시울을 붉혔다. 박씨는 "이겨내야 한다. 지금은 동생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모친 그랜트(한국 성씨는 김·51) 씨는 지난 16일 애틀랜타 피드먼트 로드에 있는 일터 골드스파에서 백인 로버트 앨런 롱의 총격에 머리를 맞아 생을 마감했다.
박씨는 동생(21)과 함께 단둘이 미국 땅에서 살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번 총격사건에서 유일한 한국 국적 희생자의 가족인 박씨는 19일(현지시간) 한인 밀집 거주지인 덜루스의 집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했다.
박씨는 처음엔 담담해 보였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눈이 충혈됐다.
그가 처음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것은 사건 당일 저녁이라고 했다.
"엄마와 함께 일하는 분의 따님이 내 동생 친구에게 얘기해 알게 됐어요. 동생과 바로 달려갔죠. 경찰이 못 들어가게 하면서 경찰서로 가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정신없이 찾은 경찰서에 자신의 연락처만 남기고 집으로 가야 했다.
그가 지금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모친의 시신을 인계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 지 만 사흘이 지났지만,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는 "제가 장남인데, 엄마를 쉬게 해달라고, 시신을 돌려달라고, 사흘간 매달려 있는데 경찰은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그것도 제가 경찰에 매일 전화하고, 경찰은 '나중에 전화하겠다'는 말을 반복할 뿐 한 번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며 "인터뷰하는 지금도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애틀랜타) 한국 총영사관과 계속 접촉하고 있고, 그곳의 한 분이 저를 많이 도와준다"며 "일이 벌어진 뒤의 절차 등 문제를 도움받고 있다"고 전했다.



박씨 형제는 이제 미국에 가족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는 이모와 외삼촌 등이 있다고 한다.
사건 이후 그들과 연락을 취했는지 물었다.
"오실 수가 없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문제도 있고, 그분들 경제 상태도 모르고. 엄마는 원래 이모, 외삼촌과 자주 연락했고, 연락할 때마다 우리에게 '와서 인사해'라고 하셨어요. 요즘은 저도 자주 연락하죠. 이번 일 이후 이모는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는 "이모가 매일 통화에서 '못가서 너무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울면서 얘기한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아니까 마음에 담아두진 않는다. 그냥 '울 수 있으면 울고, 너무 많이 울지는 마세요'라고 답해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와 동생은 모두 미국에서 태어나 학교에 다녔다.
그렇지만 그도 항상 '엄마의 나라' 한국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항상 한국에 가고 싶었죠. 고국이니까요. 하지만 돈과 시간이 문제였어요. 만날 '이번 겨울방학 때는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일을 해야만 했고, 우리 형제만 갈 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말로만 항상 '다음 방학 때 가자' 였죠."
그는 모친이 평생 홀로 형제를 정성껏 키웠다고 했다. 그런 모친의 생전 모습은 여자친구 문제 상담 등 모든 얘기를 나눴던 친구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는 이번 사건을 사전 계획된 인종범죄라고 확신했다.
그는 "세 곳을 골라서 범행했다. 사전에 계획한 것"이라며 "그것도 아시안들이 주로 희생됐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겠느냐"고 반문했다.



마침 이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애틀랜타를 직접 찾은 날이다. 박씨는 바이든의 방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이든 대통령, 미국 정부, 미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박씨는 '미국에는 역사가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힌트들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반복될 뿐'이라는 온라인에서 본 글이라며 인용했다.
그는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없다"며 "변화를 일으키지 않으면 반복만 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박씨는 모친을 돕기 위해 인근 카페에서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는데, 대유행 탓에 아예 학교를 휴학했다. 학생인 동생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모친이 미국 영주권자인 한국민이라고 했다. 애틀랜타 한국 총영사관은 이날 사망 한인 4명 중 1명은 한국 국적을 보유한 미 영주권자, 나머지 3명은 미 시민권자라고 밝혔다.
그는 모친이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고 했다. 숨진 그랜트씨는 과거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모친이 '혹시 모르니 사진을 가지고 있어라'며 생부의 사진을 건네준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는 없다며 더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동생을 돌보고 가장으로서 경제를 꾸려나가는 게 중요해졌다는 그는 최근 온라인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도움을 요청해 적지 않은 돈이 모였다.
사는 집에서 나가야 할 처지였지만 이젠 집을 비워줄 걱정도 없어졌다고 한다.
모친의 물품들은 미국 사회 관례에 따라 기부하겠다면서도 딱 한 가지 평생 간직하고픈 유품이 있다고 했다.
"엄마 물건을 찾다가 사진 앨범을 발견했어요. 오래된 갈색 사진이 엄청 많아요. 엄마는 그 추억을 간직했던 것 같아요. 이제 제가 그것을 간직하려 해요."
그는 경찰 수사에 대한 시스템을 이해한다면서도 "법적으로 제가 엄마의 시신을 가져올 수 없다고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일을 할 생각이 있는지를 묻자 "그렇다고 정말 말하고 싶지만 지금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너무 커서 그렇게 말할 겨를이 없다"며 "지금은 엄마를 쉬게 하고, 이 상황부터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honeyb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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