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주말 시위 긴장감 속 찾은 양곤 참극의 현장 노스오깔라빠
기관총에 최소 6명 사망…도로 곳곳 깨진 벽돌에 허물어진 타이어·널빤지 '바리케이드'
현장 목격했던 시민 "너무 끔찍, 지금 생각해도 치떨려"…시위대, 다시 군경 막을 준비
(양곤<미얀마>=연합뉴스) 이정호 통신원 = 도로 곳곳에는 깨진 벽돌이 널브러져 있다.
바리케이드로 사용됐음 직한 타이어와 나무 널빤지들 역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허둥지둥 넘어가며 밀치기라도 한 듯 어수선하게 도로 위에 흩어져 있다.
SNS에서 봤던 군경이 거칠게 밀치고 가던 파란 대형 플라스틱 파이프들도 먼지를 쓴 채 뒹굴고 있었다.
지난 5일 오후 찾은 양곤 북쪽 노스오깔라빠 구(區)의 모습이다.
이 지역은 지난 3일 이번 쿠데타 이후 양곤에서 최악의 유혈 참사가 발생한 곳이다.
군경이 기관총으로 무자비하게 시위대를 향해 총격을 가하면서 외신 등을 통해 보도된 사망자는 최소 6명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사망자 숫자가 10명을 웃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곳은 이틀 전 집중 총격이 벌어진 참사의 현장 근처였다.
아직도 도로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증언하듯 어지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의 생각이겠지만, 그날의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길을 지나는 시민들도 이날은 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주변에는 얇은 플라스틱으로 된 흰색 또는 노란색의 '공사장 헬멧'을 쓴 시위대가 군경 진입을 막기 위해 다시 바리케이드를 도로 곳곳에 쌓아놓고 그 주변으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사가 발생했던 곳은 한국으로 따지면 구청 주변으로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그날도 군경이 오전 일찍부터 시위대가 모일 걸로 생각하고 선점했다.
현지인들 이야기로는 그런데 시위대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군경이 점령한 양쪽 도로를 막아버렸고, 결국 군경은 고립되는 형국이 됐다고 한다.
오후 5시께 군 병력이 추가로 투입되자 시위대도 막았던 바리케이드 한쪽을 열어 고립되다시피 했던 군경을 내보냈고 그렇게 그날의 시위와 대치 상황은 끝나는 듯했다.
그런데 군경을 태운 마지막 트럭이 떠나던 중 트럭 위에 거치된 기관총이 시위대를 향해 불을 뿜었고, 시위대는 속절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는 내용이 현지 SNS에 줄을 이었다.
최대 도시인 양곤을 비롯해 지난 한 달간 미얀마 곳곳에서 이어지는 쿠데타 규탄 거리 시위 현장은 부상자가 발생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군경이 의무 요원들의 구급차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고, 의무 요원들에 대한 폭행까지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총격이 벌어졌던 곳에서 2~3㎞ 이내에 국가가 운영하는 종합병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급차가 현장에 접근할 수 없어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주민들은 보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 미얀마인은 기자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너무 끔찍해서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미얀마 시위대는 이날부터 'R2P'라는 팻말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높이 들기 시작했다.
R2P는 국가가 집단학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 범죄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할 책임을 의미한다.
만약 각국이 자국민 보호에 명백히 실패할 경우에는 국제사회가 강제 조치 등을 통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다.
자국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학살하는 군사정권에 대해 유엔의 '인도적 개입'을 더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이날 찾은 노스오깔라빠구를 포함해 곳곳에서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38명 이상이 숨진 참극이 벌어진 뒤에, 그리고 대규모 시위가 예정된 주말을 목전에 두고 외치는 국민들의 호소이기에 그 팻말의 의미가 더 깊이 다가오고 있다.
말뿐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실질적 도움이 너무도 절실한 미얀마 상황임을 깨닫는 현장이었다.
sout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