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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쑤즈량 교수 "램지어, 옛 일본 우익관점 되돌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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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쑤즈량 교수 "램지어, 옛 일본 우익관점 되돌리려"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였다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정론"
"램지어, 일반적 성매매와 일본군 위안부를 혼동한 것"
"민족의 기억은 영원…죄를 인정한다면 관대할 수 있어"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중국의 대표적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전문가인 쑤즈량(蘇智良) 상하이사범대 교수는 23일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교수의 '위안부 논문'과 관련해 "1990년대 초 일본 우익 관점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쑤 교수는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이룬 공통 인식과 거리가 있는 램지어 교수의 도발적 발언이 나온 것이 일본 내의 '역사 수정주의' 조류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논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근대사 연구자인 쑤 교수는 1991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 국제회의에서 우연히 일본인 학자로부터 자신이 사는 상하이에 첫 일본군 위안소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30년간 그는 위안부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상하이에 있는 첫 일본군 위안소인 '따이살롱'(大一沙龍·Daiich Saloon)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중국 전역에서 수백 곳에 달하는 위안소를 찾아냈고, 300명에 달하는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내 피해 구술을 모으는 등 일본군 위안부의 관련 사료를 가장 많이 발굴해낸 학자 중 한 명이다.
쑤 교수는 중국 정부가 공식 지정한 난징(南京)시 리지강(利濟巷) 위안소 기념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고 현재도 중국위안부문제연구센터 주임(소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쑤 교수와의 문답.

--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공인된 매춘부이지 성노예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오래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 학자로서 어떻게 평가하나.
▲ 그의 짧은 논문 표제어는 '계약'이다. 계약서가 있어 강요당한 게 아니고 인신의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는 그의 관점은 설득력이 없다. 그는 많은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건 역사학 문제다. 역사학은 실증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 240명 가까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어서지 않았는가. 그럼 당신(한국)은 이러한 증거를 가진 것이다.
나는 30년간 이 연구를 하면서 중국에서 300명에 가까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냈다. 이들 절대다수가 인신의 자유를 잃고 성노예 생활을 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하나하나 사례를 통해서 위안부가 일본군의 성노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유엔 인권위원회,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도 인정한 것이다. 위안부가 일본군의 성노예였다는 것은 이미 뒤집을 수 없는 정론이며 (램지어 교수의) 작은 논문 하나로 뒤집을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이를 경계를 해야 한다. 역사 수정주의 조류가 있다. 아베 정권 당시에도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특히 고노(河野) 담화를 뒤집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 계약이라는 법학 관점으로 위안부 문제 이해를 시도한 접근 방식이 유효하다고 보나.
▲ 허구로서 설득력이 전혀 없다. 법학으로 역사를 연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학 역시 역사를 연구하려면 증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이 학자가 소양이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모종의 지시를 받고서 이런 글을 쓰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 초기인) 1991년이 아니다. 지금 위안부 문제 연구는 깊이는 매우 깊다. 이렇게 많은 증거가 산처럼 쌓여 있기에 이 산을 밀어 넘어뜨려야만 램지어 교수의 결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너무 유치했다.
-- 램지어는 논문에서 위안부 제도 시행 전에 한국 여성이 중국 지역에 가 자발적인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기에 일본군 위안부도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한다.



▲ 그는 일반적 성매매와 일본군 위안부를 혼동했다. 우리가 말하는 위안부는 일본 정부와 군대가 통제·추진하고 법무성, 외무성, 경찰 등 정부의 다른 부문이 모두 참여한 것을 말한다. 역사적 결론은 많은 증거를 통해 내리는 것이다. 하나만 갖고서는 충분하지 못하고 그 무엇도 설명할 수 없다. 대량의 증거를 보고 나서야 하나의 공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역사는 매우 복잡하다. 위안부 문제의 결론은 그들이 인신의 자유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위안부가 전쟁 당시 죽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다.
-- 램지어 교수의 논문 중 가장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 사실 그는 위안부가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운영한 성노예 제도의 성격을 띠는 것을 부정하려고 시도한다. 그의 핵심 관점은 위안부를 매음하는 사람으로 보려는 것이다. 1990년대 초 일본 우익 관점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주장을 용인할 수 없다. 그는 일본 정부의 전쟁 (범죄) 책임을 회피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해 거대한 증거의 산을 쌓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램지어 교수를 비판해야 한다.
-- 미국 역사학계의 일부 동료 학자들이 국제법경제리뷰 측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게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완전히 동의한다. 국제법경제리뷰가 이렇게 형편없는 논문을 싣는다면 이 잡지의 치욕이자 영원히 오점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편집장과 편집인들이 무엇이 좋은 논문인지 무엇이 수준이 낮은 논문인지를 구별할 능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관련된다. 이런 논문이 (그대로) 발간된다면 황당한 일이 될 것이다.
--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해결하기 어려운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다.
▲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일본이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인들도 억울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고노 담화를 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고노 담화를 지키려고 하지 않는 데 있다. 정확한 역사적 결론을 얻었다면 어떨 때는 이게 있다고 했다가 어떨 때는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독일이 일본처럼 했다면 유럽에 평화는 없었을 것이다. 독일과 영국·프랑스가 화해할 수 있었겠는가. 아시아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민족의 기억은 영원하다. 그렇지만 죄를 인정한다면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 때처럼 돈을 줬으니 다시는 언급하지 말라 이런 식의 태도는 안 된다. 이것은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ch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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