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 뒤집는 바이든, 관세는 그대로…속내는 뭘까
대중국 고율관세·철강 관세 "검토중" 입장 반복…"시간 끌 것" 전망
유권자 표심 의식…각종 현안서 협상 지렛대로 활용 가능성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임 행정부의 외교 정책 중 무역 분야만큼은 발빠른 변화를 주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폐기 대상으로 치부하며 이민, 기후변화, 인종 정책 등을 줄줄이 뒤집고 있지만 무역 분야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을 손대려는, 눈에 띄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역법 301조 상 불공정 행위를 문제 삼아 중국에 부과한 고율의 관세는 미중 무역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글로벌 경제를 들었다 놨다 한 사안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동맹의 훼손이라는 우려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국가안보 침해를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유럽 등의 알루미늄과 철강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는 자국에 불리한 결정을 내린다는 불만을 품은 미국이 위원 선임을 반대해 2019년 12월부터 기능이 중단된 상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6일 남겨둔 지난달 14일 한국 기업과 직결된 세탁기는 물론 태양광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2년 더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동맹과 다자주의를 중시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 복원을 강조해온 바이든 대통령이 들어서면 이들 정책에 철회나 축소 등 변화가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있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대중국 관세나 철강 관세 등에 대해 전 행정부의 정책을 검토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지만 아직 결론이 나거나 특별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없다.
AP통신은 9일(현지시간) 새 행정부의 무역정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바이든 대통령이 하지 않은 일을 봐야 한다며 기존 관세를 취소하거나 WTO 상소기구의 위원을 선임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은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이들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는 뉘앙스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매리 러블리 선임연구원은 "바이든 대통령은 다수의 무역 문제에 대응하기 전에 미국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반복적으로 말해 왔다"며 "그는 시간을 끌며 천천히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전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억제, 경기 회복 등 국내 문제가 바이든의 최우선 과제라는 이유도 있지만, 정치 상황이나 협상력 면에서도 기존 정책을 서둘러 바꾸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의 기업과 노동자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곳은 각종 선거 때마다 승패를 좌우하는 경합주, 즉 '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곳이다.
협상 전략 측면에서도 미국은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주로 무역수지 불균형을 문제 삼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불공정 무역 관행 개선과 지식재산권 절취 등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태도 변화를 거세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또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홍콩 등의 인권과 남중국해의 영유권 주장 문제를 강하게 제기할 공산이 높다.
AP는 "바이든 팀이 대중 관세 제거를 서두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으로부터 큰 변화가 없다면 쉽게 완화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예상했다.
WTO 상소기구의 위원 선임 문제 역시 미국이 WTO 개혁 문제와 연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정권을 불문하고 WTO가 중국 등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막는 데 제 역할을 못 하고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역 분쟁 시 미국에 불리한 결정을 자주 내놓는다는 불만이 강했다. 이는 미국의 WTO 개혁론으로 이어졌다.
AP는 "바이든 대통령은 위원 선임 문제를 WTO의 변화를 설득하기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할 수 있다"며 "여기에는 기업에 불공정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수출품을 덤핑 판매하는 나라에 대한 소송을 더 쉽게 만드는 것이 포함된다"고 전했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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