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억명] 깊어지는 불평등 구조…바이러스보다 무섭다
교육·백신 확보서 빈부 명암…노숙·실업 증가 속 부자 재산 더 늘어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어느 때보다 더 불공평해질 것"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인도 뉴델리의 한 부유층 가족은 최근 미국 플로리다로 떠났다.
주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나오자 서둘러 백신을 맞기 위해서다.
인도에서도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우선 접종 대상인 의료진, 경찰 등에 비해 이 가족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점을 고려해 이같은 선택을 했다.
이들은 따뜻한 고급 휴양지에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족 가운데 학생은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소화한다.
하지만 인도 내 빈곤층 학생의 사정은 이와 전혀 딴판이다.
방역은커녕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세계은행(WB) 통계에 따르면 인도 10살 어린이 가운데 55%만이 글을 읽을 수 있다. 한창 배워야 할 나이대의 아이들 상당수가 이미 교육에서 소외된 상태라는 뜻이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교육 현장에서 더 멀어졌다.
감염 우려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고 온라인 교육이 실시됐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수 밖에 없다. 이들 대부분에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아이들은 다리나 나무 아래 같은 야외에서 자원봉사자로부터 교육을 받는다. 일부 지역 학교 교사들은 주택의 담벼락을 칠판 삼아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격차 확대는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빈부격차가 크고 빈곤층이 많은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학교에 갈 수 없고 원격수업 참여 여력도 없는 아이들은 일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데이비드 맬패스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해 10월 언론 인터뷰에서 전 세계 개발도상국 학생들 10억 명이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밖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사태 충격 여파는 교육을 넘어 생존의 문제도 미친다.
이탈리아에서는 교육 수준이 낮고 가난할수록 코로나19 치명률이 더 높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이탈리아 통계청(ISTAT)은 그 원인으로 빈곤층이 밀집 거주 환경에서 생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이런 불평등 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홍콩에서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최근 노숙자가 많이 늘어났다. 기존 노숙자들이 처한 환경도 더 악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러 나라에서는 실업자도 크게 늘었다. 실업자 대부분은 빈민이나 서민층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부자들의 지갑은 더욱 두툼해졌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중남미 지역 억만장자 73명의 재산이 작년 3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7월까지 총 482억달러(약 53조원) 늘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백신 확보 과정에서는 국가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듀크 대학 등의 분석을 토대로 유럽연합(EU)의 경우 인구 대비 2배, 미국과 영국은 4배 이상 접종이 가능한 백신 물량을 '입도선매'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생산 물량의 한계 때문에 많은 저소득 국가들의 경우 2024년 전까지는 자국 인구 전체에게 접종할 수 있는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 국가의 경우 백신 유통에 필수인 콜드체인(저온 유통망) 인프라가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8일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당시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한 42개국 가운데 36개국이 고소득 국가이고 6개국은 중간 소득 국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것은 잠재적으로 (백신의) 가격을 올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국가에 있는 고위험군 사람들이 백신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WHO가 주도하는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및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통한 공평한 분배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 과정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경제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후 선진국은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는 반면, 개발도상국은 회복이 더딘 'K자 양극화'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세계은행은 2022년 남미와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11년보다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개도국은 지난해부터 이주노동자의 송금, 관광산업 침체,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수익원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 등 부국은 올해 4.2%, 7.8%의 경제성장률을 각각 기록하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고 경제 분석 기관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전망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두려운 시기를 빠져나온 세계는 어느 때보다 더 불공평한 모습을 띨 것"이라며 "가난한 나라들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해 계속해서 황폐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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