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쟁탈전 가열…흉악범에 접종해야 하나 논란도
미 콜로라도, 정치공세에 집단시설 우선접종안 철회
"'접종자격' 따져 우선순위 정하면 팬데믹 길어질 뿐"
보건-윤리 딜레마…자국 우선주의 넘어 내부갈등 소지
같은 땅 안에서도 자국민만…각국서 백신 이기주의 갈등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지속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가열되던 백신 쟁탈전이 국가 내부로까지 파고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주 정부의 배분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범죄자가 준법 시민보다 먼저 접종을 받는 게 윤리적으로 합당하냐는 논쟁까지 이어지고 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콜로라도주는 고령층과 기저질환이 있는 시민보다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백신을 먼저 접종하려던 계획을 세웠다가 십자포화를 맞고 백지화했다.
지역 언론 덴버포스트의 칼럼니스트는 4명을 죽인 죄수가 법 없이도 사는 선량한 78세 자기 아버지보다 미리 보호받는다고 주장했다.
콜로라도주 수뇌부가 흉악범들을 애지중지한다는 이 같은 주장은 소셜미디어로 번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과 콜로라도주 지방 검사까지 비판에 가세하면서 주 정부는 결국 굴복했다.
콜로라도주가 재소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둔 데에는 방역을 더 효과적으로 차단하려는 이유가 있었다.
교도소처럼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시설은 집단발명 가능성이 크다. 출퇴근하는 교도관들이 감염되면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급속한 지역사회 전파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의학저널 랜싯의 작년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콜로라도주에서 발생한 15대 대형 집단발병 가운데 14건이 교정시설이나 대학 기숙사와 같은 공동생활 시설에서 발생했다. 미국 전체적으로도 50대 집단발병 중 40건이 교정시설에서 나왔다.
매슈 위니아 콜로라도대 생물윤리·인간성 센터 소장은 "재소자들은 뭔가 끔찍한 짓을 저질러 감방에 있기 때문에 줄을 설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로 낙인이 찍힌 인구"라고 말했다.
위니아 소장은 누가 접종 자격이 있느냐를 윤리적으로 따지는 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 길어지고 사망자만 늘어날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교도정책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미국 내 10여개 주가 방역 차원에서 콜로라도주와 비슷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뉴저지, 워싱턴 등은 이미 재소자들에게 접종을 시작했고 코네티컷, 델라웨어, 뉴멕시코 등 7개주는 현장 의료진, 요양원 거주자 다음으로 재소자에게 접종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WP는 미국 주 정부의 절반 정도가 일반 대중보다 재소자들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백신 보급을 추진하지만 세부 사항은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콜로라도주는 정치적 비판 속에 교정시설을 우선순위에서 배제하면서 노숙인 쉼터와 같은 다른 집단생활 시설도 함께 강등시켜 새로운 리스크를 만들기도 했다.
이미 국제무대에서는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쟁탈전이 백신 개발이 이뤄지기 전부터 치열했다.
서방 주요국들은 자국 인구보다 많은 투약량을 입도선매해 저개발국이 지구촌 보건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렀다. 백신 물량 부족으로 자국민 우선 공급 방침을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행정명령까지 발동해 자국 제약업체들이 백신을 개발해 자국민에게 우선 투여하도록 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균등 접근을 위한 글로벌 협력체인 코박스(COVAX)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백신 제조업체인 인도의 세룸인스티튜트(SII)는 3일 AP통신 인터뷰에서 인도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 물량을 인도에 공급하기 전까지는 외국으로의 수출을 금지했다고 밝혔다.
또 영국 일간 가디언은 누적 접종자가 벌써 100만명이 넘은 이스라엘의 경우 점령 지역인 서안 및 가자지구 내의 이스라엘인을 대상으로도 접종을 하면서도 팔레스타인 주민은 대상에서 배제해 윤리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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