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꺼낸 새 경제 화두 '수요 개혁'이란 무엇인가
재정 동원 부양 대신 분배 개선 등으로 소비 확대 도모
'시코노믹스' 핵심인 공급측 구조개혁과 '양 날개' 형성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최근 중국 경제계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을 정점으로 한 중국 지도부가 새로 꺼내든 개념인 '수요 측 개혁'이 과연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요 측 개혁이 과거처럼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과 달리 소득 분배 개선, 부동산 가격 안정 등 구조적 개혁을 통해 내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중국의 새 경제 전략 '쌍순환'과 '수요 개혁'
지난 11일 중국 공산당의 중추 기구인 정치국이 시 주석 주재로 내년 경제 운용 방안을 주제로 한 회의를 열고 내놓은 보도문에 전에는 볼 수 없던 낯선 표현이 등장했다.
바로 수요 측 개혁이라는 단어였다.
정치국은 "공급 측 구조 개혁을 확고히 틀어쥔 가운데 동시에 수요 측 개혁에도 주력해야 한다"며 "생산·분배·유통·소비의 각 프로세스를 관통하는, 수요가 공급을 견인하고, 공급이 수요를 창조하는 더욱 높은 수준의 동태적인 균형을 형성함으로써 국민경제의 전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대목은 중국이 시진핑 시대의 경제 정책, '시코노믹스'의 핵심인 '공급 측 구조 개혁'과 대등하게 수요 측 개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점이다.
중국은 5년 전인 2015년 말 공급 측 구조 개혁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꺼내 들면서 철강 등 일부 산업의 과잉 생산 해소, 부채 감축(디레버리징)을 통한 금융 위험 제거, 산업 구조 고도화 등 나라의 장기 경제 발전을 위한 체질 개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번에 수요 부문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중국 지도부가 수요의 중요성에 주목한 것은 미중 신냉전 속에서 중국이 내수 발전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쌍순환(국내 대순환과 국제 순환의 이중순환) 전략을 펴고 나온 것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수요 측 개혁이라는) 새 정책은 지난 5월 공개된 쌍순환 경제 전략과 딱 들어맞는 것"이라며 "중국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직면해 국내 수요와 내부 혁신에 더욱 의존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수요 측 개혁은 쉽게 말해 앞으로 더욱 중요성이 커진 내수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늘리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말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과 미중 신냉전이라는 엄혹한 대외 환경 악화 속에서 중국 지도부는 이미 지난 5월부터 국내 대순환을 중심으로 한 쌍순환 경제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하지만 중국의 전반적 경기 개선 속에서 수출과 투자가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지만 소비는 여전히 예년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 공식 통계를 보면, 올해 1∼11월 중국의 소비 활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4.8% 감소했다.
◇ 후진타오식 재정 퍼붓기와 '결별'…"소득 분배 가장 중요"
여기서 주목되는 대목은 중국이 과거와 같이 재정 퍼붓기를 통한 인위적 소비 확대가 아니라 소비 잠재력이 방출되는 것을 막는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제도적 개혁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이다.
과거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제 충격을 상쇄하고자 전국적으로 자동차·가전 등 소비에 대규모 보조금을 살포하면서 국민들의 소비를 장려했다.
하지만 전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 주석 시절 이뤄진 이런 인위적 부양책은 각종 부작용을 남겼고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에 무거운 '부채 유산'을 남겼다.
여러 중국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수요 측 개혁 차원에서 ▲ 소득 분배 개선 ▲ 주택 등 부동산 시장 안정 ▲ 사회보장제도 강화 등의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중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소득 분배 개선 문제다. 마침 중국 지도부도 이번 정치국 회의를 통해 '분배'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은 공산당이 이끄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부의 대물림을 막는 대표적인 장치인 상속세조차 존재하지 않아 일각에서는 '부자들의 천국'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높은 주택 가격 문제가 수년째 사회적 화두지만 부동산 보유세 도입 논의도 10년 넘게 공전하며 별다른 진전이 없다.
리쉰레이(李迅雷) 중타이(中泰)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차이신(財新)에 "내수 확대는 전체적인 주민 수입 증대뿐만 아니라 소득 격차 해소에도 의존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중하 수입 계층이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많은 중국 경제 전문가들은 중국의 소비가 올해 점차 되살아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유층의 사치성 소비가 급증했을 뿐 중산층과 서민의 소비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위축됐다고 지적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이 소비의 양극화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 빚에 발목잡힌 중국…"재정 동원 없는 수요 확대 고심"
아울러 부동산 시장 안정화 역시 중요한 문제다. 집값이 안정되면 중산층과 서민의 주거비를 낮춰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선전(深?) 등 중국 대도시의 주택 가격은 서울, 도쿄와 유사하거나 일부 지역은 오히려 비싸 아직은 한국, 일본보다 낮은 평균 소득을 고려했을 때 일반 중국인,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은 매우 큰 편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 정부가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을 인터넷 공룡 기업을 옥죄는 각종 조처를 내놓는 것도 일부 거대 기업과 마윈(馬雲), 마화텅(馬化騰) 같은 소수의 신흥 재벌만 부자가 되는 '부의 편중' 현상을 막겠다는 식의 인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이 이처럼 대규모 재정 투입이 아닌 구조 개혁을 통한 수요 확대로 시선을 돌린 것은 이미 부채 문제가 심각해 과거와 같은 길을 걸어가기에는 큰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래리 후 매쿼리 캐피털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SCMP에 "수요 측 개혁은 이미 높은 부채 수준을 우려해 경기 부양 없이 수요를 끌어올리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회과학원 산하 싱크탱크 국가금융발전실험실(NIFD)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부채 비율(정부, 비금융 기업, 가계 포함)은 270.1%로 작년 말의 245.4%보다 크게 올랐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몸을 돌려 코로나19 이후 '출구 전략'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리쉐쑹(李雪松) 사회과학원 공업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열린 '2021년 중국경제 정세 분석 및 예측 보고서' 발표회에서 내년 자국 경제 회복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부양 강도는 올해보다 낮아져야 한다면서 정부가 올해 3.6%까지 올린 재정 적자율 목표를 내년 3% 안팎으로 내리고 특별 국채 발행은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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