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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 음악 인종 장벽 깬 흑인 가수 프라이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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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 음악 인종 장벽 깬 흑인 가수 프라이드 별세
코로나19 합병증…흑인 최초로 컨트리 앨범차트 1위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백인 일색이었던 미국 컨트리 음악계에서 인종 장벽을 깬 흑인 가수 찰리 프라이드가 86세로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프라이드가 전날 텍사스주(州) 댈러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시시피주(州)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프라이드는 1967년 발표한 '더 컨트리 웨이'(The Country Way)가 흑인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컨트리 앨범 차트 1위에 오르면서 스타가 됐다.
프라이드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일부 컨트리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은 그의 노래 송출을 중단하는 식으로 차별행위를 했지만, 프라이드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인종에 상관없이 팬들을 끌어당겼다.
그는 29곡의 컨트리 차트 1위 히트곡을 발표했고, 인종에 상관없이 최초로 컨트리음악협회(CMA)의 최우수남자가수상을 2년 연속 수상했다.
지난 2000년에는 컨트리음악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스타가 된 뒤에도 차별 행위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톰 존스가 불러 전 세계적인 히트곡이 된 '그린 그린 그래스 오브 홈'을 취입하려고 했지만, 가사 중 '금발의 메리'라는 대목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는 일화였다.
흑인 남자 가수가 백인 금발 여성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회적 금기였다는 설명이다.
프라이드는 청소년 시절에는 메이저리그(MLB)의 첫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의 영향으로 야구선수를 꿈꿨다.
그는 흑인 리그인 니그로리그에서 투수로 활약했고, 메이저리그(MLB)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뉴욕 메츠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프라이드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공동 구단주 중 한 명이었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구단주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프라이드는 위대한 목소리를 지닌 훌륭한 신사였다. 우리 부부는 그의 음악과 정신을 사랑한다"고 애도했다.
kom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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