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한달] 트럼프 희미해진 희망…바이든 취임준비 속도
경합주 줄줄이 '바이든 승리' 승인…트럼프, 소송 '줄퇴짜'로 입지 좁아져
트럼프 '불복' 불변 속 '퇴임 시사' 퇴로 열어놔…공식일정 없이 골프·트윗
바이든, 대선 20일 만에 인수위 활동 공인…'여성·인종' 고려 인선 박차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11·3 미국 대선이 치러진 지 한 달이 돼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불복 모드다. 선거가 조작됐다며 취한 법적 대응이 대부분 무위로 돌아가면서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당선인 대우를 받게 된 조 바이든 당선인은 정부 핵심 정보에 접근하고 주요 인선을 발표하는 등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대외 정책을 중심으로 탈(脫)트럼프 기조를 뚜렷이 하고 있다는 평가다.
◇ 트럼프, 잇단 바이든 승리 인증에 패색 짙어져…"조작선거" 주장 지속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패배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선 전부터도 승복 불가를 시사해왔다.
바이든이 무난히 당선될 것이라는 대선전 여론조사와 달리 개표 초반 승기를 잡는 듯했지만, 막판 쏟아진 우편투표로 주요 경합주(州) 대부분을 내줬다.
대선 나흘만인 지난달 7일 우편투표까지 대부분 개표가 되자 미 언론은 일제히 바이든 당선을 공식화했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우편투표는 사기'라는 입장을 오래전부터 내비쳐 온 트럼프는 불복 의사를 뚜렷이 하며 소송을 쏟아냈다.
우편투표자 다수가 바이든 지지층인 탓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무시하는 트럼프의 기조에 맞춘 유권자는 우편투표를 선호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정조준한 지역은 자신이 패배한 경합주였다.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등 6곳의 승부를 되돌리는 게 목표였다.
대부분 주가 우편투표를 했지만 자신이 이긴 지역은 문제없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그러다 보니 수십 건 쏟아낸 소송은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됐다.
트럼프 측 요구로 재검표 등 추가 검증도 거쳤지만 이들 6개 주 정부는 지난달 30일부로 모두 바이든 승리를 공식 인증했다. 법정 소송으로 선거결과 확정을 지연시켜 공화당이 장악한 주 의회가 선거인단을 뽑게 하려는 전략이 일단 어그러진 셈이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패배를 의식한 언행을 조금씩 내비쳤다.
바이든 불인정 입장은 대선 20일 만인 지난달 23일 연방총무청(GSA)에 바이든 인수위에 협조하라고 지시하면서 변화가 감지됐다. 26일에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지면 백악관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퇴로를 열었다.
'선거 조작' 입장은 그대로였지만 조금씩 패배로 가는 수순을 밟으며 이달 14일 각 주의 선거인단 투표가 승복의 중대 분수령이 된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사면한 것도 그가 임기 말임을 자인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면 온갖 수사를 받아야 하는 그에 대한' 셀프 사면'의 서곡이라는 시각으로 연결됐다.
트럼프는 지난 한 달간 두문불출하면서 '선거 조작' 트윗만 줄기차게 올리고 있다. 골프 외에 일정을 거의 잡지 않으면서 국정에 손 놓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공화당 일각의 승복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마이웨이 행보를 보이면서 4년 뒤 재출마설까지 나돈다. 내년 1월 20일 바이든 당선인 취임식 당일 재출마 선언을 해 축제 분위기에 재를 뿌릴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 바이든, 인선 발표 등 취임 준비 박차…트럼프와 차별화
바이든 당선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복 선언에 개의치 않고 '조용하게' 차기 대통령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당선 예측 직후 인수위를 출범해 코로나19, 경제회복, 인종평등, 기후변화 등 차기 행정부의 4대 우선 사항을 공개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차별을 꾀했다. 이 중에서도 코로나19 대응을 차기 행정부 초반의 역점 과제로 꼽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인수 작업에 응하지 않을 때 국가안보와 코로나19 대응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지속해서 발신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정권 인수는 물론 정보 브리핑조차 받지 못해 애를 태우던 바이든은 GSA의 인수위 활동 공인을 계기로 정권 인수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토니 블링컨을 국무장관에, 제이크 설리번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하는 등 외교안보팀을 시작으로 행정부 인선도 발표도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 측은 동맹 복원을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 기조로 내세우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 폐기를 공식화했다.
정보당국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유엔대사에 여성을 기용하고 국토안보부 장관에 라틴계를 지명했다. 유엔대사 지명자는 흑인이기도 하다.
재무장관에 여성인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낙점하는 등 경제팀 인선 6명 중 4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여기엔 흑인과 아시아계도 포함됐다.
백악관 공보팀 고위직 7명을 전원 여성으로 채우는 파격도 선보였다.
미 역사상 첫 여성이자 유색인 부통령 당선인인 카멀라 해리스의 상징성과 맞물려 인종과 성별 평등을 기하겠다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대선 거의 한 달 만인 지난달 30일부터 비로소 '대통령 일일 정보브리핑'(PDB)을 받으면서 명실상부한 당선인이 됐다. 2000년 대선 당시 재검표 논란 끝에 한 달 넘게 인수위가 늦게 출범하는 바람에 이듬해 9·11 테러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도 미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선거 사기 주장에 직접 대응하기보다는 코로나19 대응과 국가통합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이든 인수위는 오는 14일 선거인단 투표를 기점으로 불복 논란이 사그라들기를 기대하면서 내년 1월 20일 취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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