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탐색해온 미 전파망원경 해체키로…57년 역사 종언
아레시보 전파망원경 복구 불가 판단…천문학계 "가슴 찢어져"
영화 '콘택트'·'골든 아이'에도 등장한 현대 천문학의 상징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윤섭 특파원 = 인류와 외계인의 만남을 다룬 영화 '콘택트'(1997년)에 등장했던 거대 전파 망원경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19일(현지시간) 미국령 카리브해 섬나라 푸에르토리코에 설치된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을 해체하기로 했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지난 8월과 이달 6일 900t 무게의 전파 망원경을 지탱해온 철제 케이블이 잇따라 끊어지면서 직경 305m 크기의 접시 안테나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더는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NSF는 다른 케이블도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어 망원경 수리를 시도하기에는 위험한 상황이라며 "천문대 직원과 방문객의 안전을 위해 안타깝게도 해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1963년 설치된 아레시보 망원경은 현대 천문학의 상징과도 같은 시설이다.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이 망원경을 이용해 중력파를 관측하고 태양계 바깥의 행성을 찾아냈으며 지구로 다가오는 소행성을 식별했다.
2016년 중국이 직경 500m 크기의 전파망원경 톈옌(天眼)을 만들기 전까지 아레시보 망원경은 반세기 넘게 세계 최대의 단일 망원경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했다.
무엇보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외계인 탐색의 선봉대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우주과학연구소는 이 망원경이 수집한 우주 전파신호를 분석해 외계 지적생명체를 찾는 '세티'(SETI)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1974년에는 프랭크 드레이크와 칼 세이건 등 당대 최고의 천체 물리학자들이 이 망원경을 이용해 태양계와 인간의 형체, DNA 구조 등의 정보를 담은 '아레시보 전파 메시지'를 우주로 발신했다.
AP통신은 "아레시보 망원경 해체는 외계인을 찾아온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고, 뉴욕타임스(NYT)는 "우주를 관측해온 위대한 눈이 어두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망원경 해체를 불러온 철제 케이블 절단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으나 부식이 중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레시보 망원경은 57년 동안 허리케인과 지진까지도 견뎌냈지만, 세월의 무게만큼은 이겨내지 못한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아레시보 망원경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트위터에 '아레시보가 나에게 의미하는 것'(What Arecibo Means To Me)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일제히 안타깝다는 글을 올렸다.
펜실베이니아주 해버퍼드 대학의 캐런 매스터스 천체물리학 교수는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여러 영화에도 등장해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천문관측 시설이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SF 영화 '콘택트'에선 이 망원경이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나왔고, 007 영화 '골든 아이'(Golden Eye)에선 제임스 본드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이 옛 동료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에 등장했다.
jamin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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