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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가룻군수 "독립영웅 양칠성 기념사업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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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가룻군수 "독립영웅 양칠성 기념사업 원해"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 온라인 세미나에 100명 참여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인도네시아 서부자바 가룻(Garut)군의 군수가 14일 "인도네시아의 독립투쟁에 앞장선 한국인 양칠성의 이름을 도로에 붙이고 기념사업을 하고 싶다"고 거듭해서 의지를 밝혔다.



루디 구나완 가룻 군수는 이날 오후 인도네시아 역사연구단체인 히스토리카(Historika)가 '1945∼1949년 가룻의 독립투쟁에 참여한 한국인'을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맡아 이같이 말했다.
세미나에는 100명이 넘게 참석해 인도네시아인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루디 군수는 "80세 전후 주민들은 아직도 독립투쟁 당시 빵에란 빠빡 유격대(PPP)의 활약과 그중에서도 양칠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말한다"며 "나 역시 독립군의 후손으로서 양칠성로를 만들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룻에는 가발공장 등 한국기업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어 양칠성 기념사업을 하면 한국에도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히스토리카와 가룻군은 재작년부터 영웅의 날(11월10일)에 '잘란 양칠성'(양칠성 도로) 명명식을 하고자 논의를 이어왔으나 지금껏 성사되지 않았다.



히스토리카는 양칠성을 기리기 위해 도로 명명과 함께 처형장소에 표지석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다 올해는 아예 기념공원을 조성하자며 12억 루피아(9천500만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가룻군은 기념사업에 한국 정부든, 기업이든, 민간인이든 함께 참여하길 기대한다.
하지만, 양칠성이 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의 독립영웅이고 친일 논란도 있기에 현지인들이 주도적으로 기념사업을 추진하는게 맞다는 게 한국 측 입장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류완수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영사는 "양칠성은 기구하고 슬픈 개인사를 갖고 있다"며 생애를 간략히 소개한 뒤 "그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서 관련 자료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류 영사는 "가룻군에서 빵에란 빠빡 유격대 후손들, 그리고 양칠성과 현지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등을 인터뷰해 자료를 모아야 한다"고 권유했다.
1919년생인 양칠성은 일본군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1942년 인도네시아에 왔고, 1945년 일본이 패전한 뒤에는 인도네시아 독립군 빵에란 빠빡 유격대에 합류해 폭탄 전문가로서 네덜란드군에 대항했다.
빵에란 빠빡 유격대에는 양칠성뿐만 아니라 국재만 등 한국인 7∼8명이 활약했다.



양칠성은 외국인 독립영웅으로 추서돼 유해가 1975년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됐고, 1995년 8월에서야 묘비의 일본명이 한글명으로 바뀌었다.
그가 항일투쟁을 하지 않았고, 네덜란드군에 처형되기 직전 일본인들과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한국에서는 그를 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하지만, '천황폐하 만세'가 아니라 독립을 뜻하는 '머르데카'를 외쳤다는 설도 전해져 양칠성의 마지막 순간은 불분명하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등 양칠성의 행적을 추적한 저널리스트 헨디 조는 "양칠성이 사망하기 몇 년 전 무슬림으로 개종했기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히스토리카의 활동을 돕는 배동선 작가는 "코로나로 모두 어려운 가운데 끈질기게 양칠성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히스토리카의 의지가 대단하다"며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조화로운 경로로 관련 절차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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